북한인권 문제, 좌우 모두 정치화하지 말자

한국 사회에서 북한 인권-민주화 문제는 과도하게 정치화되어 있다.

북한인권에 침묵하면 좌파 또는 진보파이고 북한인권 문제를 강조하면 우파 또는 보수파로 간주된다. 정당으로 따지자면 한나라당은 북한인권 강조하는 당이고, 구여권은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당으로 인식되어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는 정치화되어 있다. 물론 한국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북한 인권 문제를 앞장서서 이야기하면 친공화당 또는 친부시 쪽으로 이해한다.

이처럼 북한 인권 문제가 보편적 가치로 취급되지 않고 당파적 또는 정파적 가치로 취급된 데에는 나름의 사회역사적 이유가 있다.

한국의 과거 민주화 운동 세력들 중에는 상당수가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비단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다. 냉전 시대 사회주의-자본주의 이념 대립은 세계 모든 나라의 민주화 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하여 남미에서도 군사 독재에 대항해 민주화 운동을 하던 좌파 세력들은 당시 남미의 유일한 사회주의 정권이었던 카스트로 정권에 대해서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서유럽에서도 많은 좌파 세력들이 소련-동구권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우호적인 태도 때문에 남미 좌파들중 많은 사람들은 카스트로 정권 내부에 심각한 인권 침해 문제가 존재함을 알았음에도 쿠바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서유럽의 좌파들 중에서도 소련, 동구의 인권 문제에 침묵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좌파들 내부에서도 쿠바 정권, 소련, 동구 정권의 인권 침해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좌파들 내부에서 새로운 노선 투쟁을 불러 일으켰고 급기야 좌파의 분화를 가져 온다.

대표적으로 1951년 7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발표된 프랑크푸르트 선언(또는 민주사회주의 선언)이 있다. 이 선언은 자유세계 30여 개국 사회주의 정당에 의해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이 결성되면서 발표되었다. 핵심적인 내용은 파시즘에는 자본주의 파시즘도 있지만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 파시즘도 존재하며, 민주사회주의자는 두 가지 파시즘 모두를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공산당에 반발해 새로운 사회당 흐름이 나타난 것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민노당 “종북주의 반대” 투쟁은 反파시즘 투쟁

다행인 것은 최근 한국에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좌파 정당인 민주노동당 내에서 종북(從北)주의, 즉 김정일 정권을 추종하는 세력들에 반대하는 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민노당 내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종북주의자 또는 주사파들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명시한 좌파 파시스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북한은 당시 소련, 동구보다도 훨씬 전근대적인 봉건적 파시즘 국가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과 이제서야 결별 선언을 한다는 것은 늦은 감은 있어도 한국 좌파들의 사상적 진화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권 문제의 정치화 책임이 좌파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파들에게도 있다. 특히 미국의 부시 정부가 들어서서 인권 문제의 정치화 강도가 심해졌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 침공 당시 인권과 민주주의 슬로건을 무력 침공을 합리화시켜주는 명분으로 사용했다.

사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가장 큰 명분은 대량살상무기(WMD) 존재였다. 그러나 막상 침공한 이후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하자 자유, 민주주의 확산을 침공 명분으로 대체해 버렸다. 이런 부시 정부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미국 내에서 평화적으로 제 3세계의 인권, 민주주의 운동을 해오던 사람들이다. 인권, 자유, 민주주의와 같은 좋은 말에 전쟁이라는 이미지를 부시 정부가 덧씌워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미국 내에서 북한인권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친공화당쪽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친민주당쪽 사람들은 속으로는 북한 인권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 친공화당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한국에서도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북한 인권에 적극적인 분들 중에는 과거 반공주의적 안보관을 가지신 분들이 꽤 있다. 이런 분들 중 일부는 북한의 인권개선은 북한이 남한으로 흡수통일되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서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방법으로 무력을 사용한 북진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인권을 언급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력을 배제하지 않는)북한붕괴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북한인권 개선은 ‘北붕괴 예방’

그러나 사실 북한 인권 운동은 북한 붕괴를 촉진시키는 운동이 아니라 북한 붕괴를 예방하는 운동이다.

인권 운동의 본질은 그 사회의 다원성을 촉진하는 것이다. 즉 북한의 인권이 개선되어 북한 내부에서도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다양한 정치 세력이 형성된다면 설령 김정일 정권이 물러나더라도 이를 다른 세력이 충분히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붕괴의 리스크는 김정일 이후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대체 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 질서 유지 기능이 마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대체 세력이 형성된다면 이런 무질서의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북한 인권 문제가 정치화된 배경에는 좌파와 우파 모두 책임이 있다. 따라서 북한 인권 문제의 정치화를 막기 위해서는 좌파, 우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좌파에서는 현재 민노당 내부 친북 세력에 대한 투쟁처럼 용기있게 북한 정권과 북한 인권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또한 북한 인권 단체들과 북한 인권 개선 방법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 1월 25일 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원장은 북한인권정책협의회 토론회에 참여하여 공개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 처럼 좌파의 지도적 인사들이 가능한 이런 북한 인권 문제 토론회에 자주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파 내부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파들도 북한 인권의 개선 방법에 대한 각론을 제시해야 한다. 단지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어야 한다는 주장만 해서는 북한 인권 문제를 정치화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