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을 외면하기 위한 원칙인가?

사상 처음으로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이 북한의 인권실태를 비판하는 내용의 결의안 초안을 유엔총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결의안은 인권문제를 다루는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 제출되어 오는 11월 23일 이전에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우리 정부다.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유엔인권위원회가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불참하거나 기권해왔다. 이번 총회에서는 부디 그 동안의 반(反)인권적 행태를 되풀이하지 않기 바란다.

정부는 그동안 북한인권결의안 기권의 근거로 ‘북한인권문제 4원칙’을 제시해왔다. 그 ‘원칙’이라는 것을 뜯어보면 순전히 잘못된 논리와 판단에 기초해 있다. 4원칙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보자.

한국 정부의 구색맞추기식 ‘인권보편성’

첫째, 정부는 인권은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정부의 실제 활동이 과연 그런가?

그동안 정부는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대원칙을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첫 번째 원칙으로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인권문제에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지난 몇 년간 유엔인권위가 북한인권결의안을 꾸준히 채택해왔으나 우리 정부는 결의안 표결에 불참하거나 기권했다. 수 없이 이어진 남북간의 대화에서도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국내외 북한인권단체의 목소리와 활동에 대해서도 냉담했다. 심지어 탈북자를 돕는 인권단체들을 ‘브로커’로 매도하기도 했다.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원칙을 첫 번째 대원칙으로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온 것이다.

이는 정부가 대북인권 4원칙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인권의 보편성 원칙’을 형식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인권은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라는 원칙에 걸맞게 북한인권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수성’ 명분으로 북한인권 방치말라

둘째, 정부는 나라마다 처한 상황에 따른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언급해왔다.

나라마다 인권 상황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독재국가와 민주국가의 인권 상황에 차이가 있고, 같은 민주국가들 간이나 독재국가들 사이의 인권상황에도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 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상황은 ‘특수성’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하고 방치할 수 있는 상황을 이미 넘어섰다는 것이 중요하다.

독재정권의 무능과 학정으로 수백 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수십 만 명이 정치범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수십 만 명이 북한을 탈출했고, 그 가운데 수 만 명은 지금도 이국땅을 떠돌며 송환의 공포와 생존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다.

2천3백만 전 주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채 수령의 노예로 살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인권유린 실태는 민족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21세기 그 어느 나라의 인권문제보다도 심각하다. 나라마다 상황이 서로 다르다는 특수성을 내세워 방치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선 것이다.

또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특수성’ 원칙은 나라마다 다른 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인권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이지, 인권문제를 방치해야 한다거나 소극적 태도를 취해도 좋다는 원칙이 아니다.

그동안 정부는 적극적인 자세로 북한의 상황과 처지에 맞게 창조적으로 인권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니다. 누가 보아도 북한인권문제에 소극적이었으며, 때론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정치적 이유를 들어 북한인권문제를 피해가려고 했다. 그런 모습을 은폐하기 위해 ‘특수성’의 원칙을 왜곡해온 것이다.

남북관계와 북한인권 개선, 서로 모순 아니다

셋째, 정부는 평화번영과 긴장완화 정책으로 북한 인권을 점진적, 실질적으로 개선하자고 했다.

이 원칙은 남북간의 긴장이 완화되면 북한인권문제가 개선될 것이라는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개선과 긴장 완화가 북한인권문제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남북간의 긴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수령독재체제에서 기인한 것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남북간의 대립이 극심했던 때보다 냉전 종식 이후, 독재체제가 강화된 시기에 더욱 심각해졌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남한과 북한의 정부 당국간 관계가 일정하게 개선된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북한인권문제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단기적으로 북한인권문제의 본질적 원인인 김정일 정권과 수령독재체제의 수명을 연장하고 통제력을 강화해줌으로써 오히려 북한인권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긴장을 완화하는 정책과 함께 적극적인 북한인권 개선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두 가지 문제가 상충되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역학관계에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수령독재체제는 독자적인 생존이 어려울 만큼 약화되어 있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세련된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상충되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

정부가 북한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남북회담의 의제로 삼으려고 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북한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쉬운 쪽은 생사존망이 불투명한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김정일 정권 스스로가 회담 참가 명분을 만들어서라도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14:1의 차이가 보여주는 남북간의 역량차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한반도의 긴장완화도 중요하고 같은 동포인 2천3백만 북한주민의 인권도 포기할 수 없다.

화해협력-통일의 동반자, ‘북한 민중’과 연대해야 한다

넷째, 정부는 인권문제가 남북관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 하자고 했다.

정부는 남북관계를 남한정부와 북한정부의 관계만으로 협소하게 인식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지금 2천3백만 북한 주민과 김정일 수령독재정권 사이에 소리 없는 전쟁 상태에 놓여있다. 북한인권문제는 김정일 정권과 북한주민의 대립과 투쟁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남북관계의 개선의 본질적 주체는 남한과 북한의 2천3백만 민중이다. 이것이 때론 김정일 정권과 얼굴을 붉히는 한이 있더라도 2천3백만 북한 주민과 연대와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북한인권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길임을 잊지 말라.

북한인권문제 해결을 통해 북한 민중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남북관계의 개선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 통일의 동반자는 김정일 수령독재정권이 아니라 독재정권 이후, 북한에 새롭게 수립될 민주정부라는 것이다.

독재정권과 한반도의 민주통일을 달성하려는 것은 명백한 판단착오이며 용납될 수 없는 반민족 반민주 노선이다. 북한 민중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머지 않아 출현하게 될 북한 민주정부와의 관계개선을 준비해야 한다. 북한인권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것이 통일조국의 동반자인 북한민중, 북한 민주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최선의 길임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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