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체포하겠다는 노구치 어쨌길래

“노구치 다카유키(野口孝行), 남, 1971년7월13일생, 일본국적자, 일본 P류여권 소지 입국, 여권번호:TG440XXXX, 주소:일본국 사이타마(琦玉)현 XX시 XX 18XX-X호, 정치학 학사, 직업:판매원”

이는 북한이 지난 27일 북한 주민 유괴, 납치 사건을 배후에 조정했거나 직접 간여했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4명 가운데 1명인 일본인 노구치 다카유키 씨의 간략한 인적사항이다. 이는 중국 법원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다.

노구치 씨는 2004년 6월28일 중국 남부 광시(廣西)장족자치구 충쭤(崇佐)시 중급인민법원에서, 불법으로 입국한 북한인들(탈북자)을 운송한 죄로 징역 8개월의 실형에 벌금 2만위안(약 244만원) 및 복역후 강제출국을 병과받았다.

중국 법원측 자료에 따르면, 노구치 씨는 지난 2003년 8월 일본에서 ’가토 히로시(加藤博)’라는 사람으로부터, “중국으로 가서 조선인 2명을 난닝(南寧.광시자치구 인민정부 소재지)으로 데려가 다른 사람에게 인도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가토 씨는 “그러면 그 사람이 조선인들을 데리고 중국 국경을 넘은 뒤 (베트남을 경유해) 일본으로 데려올 것”이라면서 경비조로 일화 50만엔을 노구치 씨에게 준다. 중국 자료에 ’신원미상’이라고 돼 있는 가토 씨는 북조선난민지원기금 사무국장 이다.

노구치 씨는 일본에서 비행기 편으로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를 통해 중국에 입국, 베이징으로 가서 서(徐)모 씨와 함께 2명의 북한인을 데리고 기차편으로 난닝역에 도착, 마중나온 사람이 북한인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자리를 뜬다. 그리고는 핑샹시 우의관을 통해 출국, 베트남을 거쳐 귀국한다.

같은해 12월6일, 노구치 씨는 같은 과정을 거쳐 신원미상인 일본인 한 사람과 함께 다롄에 도착, 한 호텔에서 예의 서씨와 함께 탈북여성들인 최(崔).신(申)모씨와 만나 ’위탁서’, ’이력서’와 함께 일본 정부에 제출할 신청서 양식을 작성하게 하고 사진도 찍어 일본 입국자료를 만든다.

이튿날 노구치 씨와 동행했던 일본인은 이들 서류를 갖고 일본으로 돌아가고 노구치, 서, 최, 신 4명은 랴오닝(遼寧)성 성도 선양(瀋陽)을 거쳐 베이징으로 간 다음 9일 열차편으로 난닝으로 향한다.

노구치 씨는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임무 수행의 증거로 가토 씨에게 제시하기 위해 계속 캠코더로 촬영을 하지만, 10일 난닝에 도착해 한 호텔에 투숙한 후 광시자치구 변방공안총대에 의해 체포된다.

중국 법원은 “인도주의적 차원의 조선난민 원조를 위해서”라는 노구치 씨의 주장에 대해, 북한인들이 난민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인도주의적 행동도 해당국의 법률을 준수해 합법적 방법과 수단으로 해야 한다는 점 등을 들어 일축했다.

충쭤시 중급인민법원은 2004년 6월28일 열린 재판을 통해, 노구치 씨가 아무런 합법적 증명서도 없이 불법으로 북.중 국경을 넘은 후 다시 중.베트남 국경을 넘어 일본으로 가려 한 북한인들을 운송한 것은 명백히 ’밀입국자 운송죄’에 해당한다고 판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노구치 씨는 체포된 날(2003년 12월10일)로부터 만 8개월이 지난 2004년 8월9일까지 실형을 산 후 판결에 따라 강제출국조치됐으나 함께 체포됐던 서씨와 탈북여성 최씨, 신씨 등의 그 이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베이징=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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