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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5년 1월 17일자)
《20일(현지 시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다. 대외정책의 수장(首長)이 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에 대한 상원 인사청문회도 18, 19일로 예정돼 있다. 그러나 부시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특히 한반도 정책 기조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라이스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 부시 대통령의 취임 연설, 2월 2일로 예정된 연두교서를 봐야 그 윤곽이 나타날 것이다. 동아일보는 부시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최근 김정안(金正眼) 기자를 워싱턴에 파견해 행정부 당국자들을 포함해 이른바 ‘무버 앤드 셰이커(Mover & Shaker· 정책전문가들)’의 동향을 긴급 점검했다. 지난해 1월 ‘무버 앤드 셰이커’ 집중취재에 이은 두 번째 작업이다.》
1년 만에 만난 워싱턴의 한반도 담당 행정부 관계자들은 말을 아꼈다.
그러나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중도 성향의 당국자들을 중심으로 ‘6자회담의 진전을 일단 지켜보자’던 1년 전과는 달랐다. 뭔가 다급함이 느껴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이어서인지 매우 분주한 모습이었다.
한 고위 당국자는 “오늘 하루만 소화해야 할 미팅이 10개가 넘는다”고 토로했다.
▽이란이냐 북한이냐=한 행정부 당국자는 부시 2기의 대북정책 기조를 묻는 질문에 “부시 대통령이 앞으로 가장 관심을 갖게 될 외교 우선순위는 1위가 북한, 2위가 이란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 재선 이후 (위에서 지시하는) 북한 관련 업무 성격이나 양이 이전과 다르다. 부시 1기의 최대 관심사는 9·11테러 이후의 국제정세 대처, 다시 말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였다. 그러나 2기 대외정책에는 변화가 감지된다.”
물론 2기 출범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도 미국의 대외정책 0순위는 이라크다. 이라크전쟁 개전 이후 미군 사상자만 1만2000명에 육박하고 30일로 예정된 이라크 총선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그러나 이라크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분위기도 강하다.
AP통신은 최근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가 이라크 못지않은 큰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총선 이후에는 혼돈 여부와 관계없이 이라크에서 발을 빼든지, 아니면 국민에게 ‘앞으로 4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기간 힘겨운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털어놓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가 어떤 식으로든 정리되면 부시 행정부의 다음 관심은 북한 또는 이란의 핵문제에 집중될 것이라는 분석이기도 하다.
행정부의 또 다른 당국자는 “우리가 이라크와 이란, 북한 문제를 한꺼번에 다룰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이란이냐 북한이냐’는 질문의 유효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 당국자는 “이라크에 쏟던 관심과 에너지가 전보다는 확실히 덜하다. 북한 관련 업무량이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이란 관련 업무나 관심이 1기보다 늘어났다는 움직임은 없다”고 전했다. 그는 “대통령이 직접 북한에 대해 챙기기 시작했다(Mr. Bush getting personally involved)”고까지 말했다.
워싱턴의 강경파인 핵확산방지론자들은 “북한이 이란 문제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됐다”며 “북한 문제를 (이란보다)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세 번이나 열렸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는 비판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를 ‘제도적 시급함(institutional urgency)’이라고 말했다. 6자회담이라는 제도적 틀을 먼저 제안한 것도 미국이고, 따라서 성과물을 얻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도 미국이라는 뜻이다.
그는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아무런 진전 없이 상황을 주시할 수만은 없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른 분석도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에서 핵비확산 담당 차관보를 지낸 로버트 아인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부시 행정부가 보기에 북한은 이미 핵무기 보유국이지만 이란은 아직 핵무기 보유 단계는 아니다”며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는 이란 문제에 훨씬 더 다급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폭풍 전의 고요”=그렇다고 대북 정책에 대한 청사진이 준비돼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한반도 문제를 전담하는 한 당국자는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공동의 대북 정책이 마련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참 침묵한 뒤 “아직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부시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정한 뒤 이를 직접 챙기고 나서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는 게 한반도 전문가들은 물론 당국자들의 공통된 전망이었다. 한 행정부 당국자는 “지금까지 한반도 정책을 둘러싼 (노선) 갈등은 실무진급에서 가장 치열했다”면서 “그러나 최고위급들, 나아가 대통령이 나선다면 이런 상황은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를 어떻게 정리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6자회담을 통해 외교적 해결을 추진한다는 미국의 기본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미 행정부 내부에 밝은 한 워싱턴 소식통은 부시 대통령을 보좌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강경파의 ‘게임플랜(Game Plan)’을 이렇게 분석했다.
“6자회담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나오지 않고 또 나오더라도 미국의 제안에 진정한 태도로 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경파는 계속 주장할 것이다. 그 후 더는 진전이 어렵다고 생각되면 먼저 일본에 북한 압박(경제제재)을 종용하고, 그 다음엔 한국과 중국에도 같은 요구를 할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문제 삼겠지만 한국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한미간 불화의 불씨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별다른 진전은
▼“압박도 외교적 해결방식… 北제외 5자회담 할수도”▼
“외교적 해결이란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의 말에는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부시 2기엔 대북정책의 기조가 바뀌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중도적 입장을 고수하며 아직 ‘채찍’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고 했던 지난해와 달리 그는 북한에 대한 ‘압박(some pressure)’을 먼저 언급했다.
이 고위당국자는 대뜸 “이젠 북한에 ‘언제 회담장에 나올 것인가’라고 묻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북한을 제외하고 5자회담을 여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익명을 전제로 한 일문일답 요약.
―6자회담의 향후 전망은….
“6자회담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또한 외교적 해결 방식이다. 외교적 해결이란 협상과 압박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어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나.
“북한에 ‘언제 회담장에 나올 생각이냐’라는 식으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나오든 말든) 회담은 언제 열린다’고 통보하는 식의 방법도 가능하다. 물론 아직 공식적인 미국의 제안은 아니다. 북한은 태도변화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협상이 진전되기 힘들다. 미국이 지난해 6월 6자회담에서 내놓은 제안에 대해 북한도 처음에는 좋다고 했다. 긍정적 요소(positive element)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다른 지침을 받고 말을 바꿨다. 긍정적인 협상 태도가 아니다.”
―미국이 말하는 외교적 해결이란 무얼 말하는 것인가.
“협상 또는 압박(경제적 압박)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을 병행하는 것이다. 압박도 외교적 해결을 위한 하나의 요소가 돼야 한다.”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다면….
“남북정상회담을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6자회담과 병행 가능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