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궁금해!] “14분만에 집 한채 뚝딱” 천리마운동 어땠나?

• 3분의 1의 자재로 3분의 3의 성과를 거두고, 14분만에 살림집 한 세대를 지음
• 한 노동자는 40일로 예정된 댐건설 공사기간을 단 5일로 단축
• 어떤 철도건설 노무반은 3~4년 걸쳐 완공 예정이었던 광궤철도를 75일만에 완공
• 대규모 비날론 공장을 1년만에 건설
• 3~4개월만에 1천여 개의 공장 건설
• 37만 정보의 논과 밭 수리기간 6개월

이상은 북한의 ‘황금기’였던, 1950년대 후반~1960년대까지의 ‘경제재건 신화’다. 또 제1차 5개년계획(1957년~1960년)도 원래 계획보다 1년 먼저 달성됐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 시기의 전후 북한경제 재건을 위해 실시한 대중운동을 ‘천리마운동’이라 부른다.

천리마기수, 천리마학교, 천리마체조, 천리마체(글씨), 천리마조선, 천리마작업반, 천리마직장, 천리마정신 등 ‘천리마’란 수식어가 있는 낱말이 14개나 북한 <현대조선말사전>에 올려져 있을 정도로 ‘천리마운동’은 북한지도부에게는 체제 선전의 수단, 인민들에게는 긍지의 상징이다.

이 대중운동은 1956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최초로 제창, 북한에서 처음으로 전국적 범위로 확산시킨 사회주의 노력경쟁운동이다.

이 운동은 1957년 강선제강소의 한 작업반에서 시작됐다. 당시 강선제강소에서 6만 톤의 생산능력밖에 없었던 것을 12만 톤으로 늘려 생산했다는 것이다. 그 후 1968년에는 8배에 이르는 45만 톤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목표를 초과 달성한 사람에게 천리마 기수, 성과를 낸 집단이나 조직에는 천리마 작업반이라는 명칭을 부여했으며, 뛰어난 성과를 낸 사람들에게는 ‘영웅’ 칭호가 주어졌다.

즉 이 운동은 기본적으로 대중의 혁명적 열의와 높은 창발성, 그리고 자기희생의 헌신성을 끌어내는 운동이었다. 이런 대중적 열정을 유발하기 위해 북한 지도부가 제일 역점을 둔 것은 도덕적 자극이었다.

영웅이 되면 기차무료 승차는 물론 ‘영웅좌석’까지 따로 마련됐다. 또한 별도로 설치된 자리에서 영화나 연극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영웅 칭호를 따려고 노력했다.

김일성은 이 운동을 “사람들을 공산주의 사상으로 교양하며, 집단적 영웅주의와 집단적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대중적 대진군운동”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천리마운동은 6ㆍ25 전쟁 이후의 피폐된 북한경제를 재건하고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일종의 무리수를 둔 데서 나타나는 부작용인 것이다. 곧 1970년대에 이르면서 퇴색되기 시작한다.

영웅칭호를 위해 혹은 달성 목표를 위해, 실제보다 높은 양을 달성했다고 허위보고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 또한 효율을 따져보지 않은 경제계획 탓으로 초기의 높은 성장률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리마운동이 전후 북한경제 재건의 상징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립함으로써 김일성 1인지배체제형성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강창서 대학생 인턴기자 kcs@dailynk.com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