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軍 창건일을 4월 25일로 바꾼 이유 아시나요?

▲ 원산항에 갓 입성했을 때의 김일성의 모습

해마다 4월 25일이 되면 북한군은 ‘조선인민군 창건절’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인민군이 창건된 날은 1948년 2월 8일이다.

인민군이 명실상부한 정규군대로 거듭난 것은 해방 직후 소련군정의 지지 하에 김일성이 새 조국건설의 3대 과제 중 하나로 내세운 무력건설 노선에 따라 시작된 것이다.

당시 인민군에는 김일성과 함께 귀국한 최현, 강건, 최춘국, 최용건, 무정 등을 비롯한 동북항일연군 및 소련군 출신이 골간(핵심)이 되었다. 초대 민족보위상은 최용건이 맡았고, 총참모장은 당년 29세의 젊은 강건이 맡아 공산권 국가들 중 최연소 참모장이 되어 소련을 방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인민군은 6.25 전쟁과 70년대를 거치면서 2월 8일을 ‘2. 8절(인민군 창건절)’로 기념했다. 근 30년 동안 북한에는 2월 8일과 관련된 각종 명칭과 선전물들이 많이 등장했다. 2.8 문화회관과 2.8 예술영화 촬영소, 2.8 비날론 연합기업소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2.8 예술영화 촬영소는 군 관련 영화를 전문으로 찍고,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는 60년대 군인들이 건설했다는 점을 기념하기 위해 붙인 명칭이다.

김일성 혁명역사 날조의 두 가지 배경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4월 25일을 인민군 창건절로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80년대 초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김일성의 혁명역사가 수정, 날조될 때 이같은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이때 당과 군이 관련된 김일성의 혁명역사가 전면 개조되었다.

김정일은 1982년 10월 ‘조선노동당은 ㅌ.ㄷ의 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를 발표하고, 조선노동당의 뿌리가 1926년 10월 26일에 중국 지린성 화전(樺甸)에서 김일성에 의해 결성되었다고 주장하는 ‘타도제국주의 동맹'(ㅌ.ㄷ)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혁명박물관과 김일성 연구실, 노동당 역사문헌들이 모두 수정되었고, 학생들의 교과서도 다시 편찬되었다.

북한군의 역사도 1932년 4월 25일 중국 안투(安圖)현 소사하 등판에서 김일성에 의해 조직되었다고 주장하는 항일유격대에 뿌리가 있다고 고쳐졌다. 이에 따라 2.8 문화회관은 4.25 문화회관으로, 2.8영화 촬영소는 4.25 영화 촬영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김일성의 혁명역사가 날조된 배경은 대략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혁명역사를 과장 선전하여 아버지의 권위를 높여주는 것이 ‘후계자의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권 내 대국들 사이에 존재하던 홀대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소련을 비롯한 대국들은 당 역사와 사회건설 역사로 작은 나라들을 홀대하는 편향이 많았다. 예를 들어 1918년 창건된 소련공산당이나, 1921년에 창건된 중국공산당의 경우,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비해 1945년 광복 이후 시작된 북한의 당, 군 건설역사가 보잘 것 없다는 콤플렉스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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