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BDA 몽니’

“북한의 협상전술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장면이다.”

제6차 6자회담이 이른바 ‘방코델타아시아(BDA) 암초’에 걸려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20일 북핵 협상에 정통한 대북 전문가는 “이럴 때 일수록 ‘북한의 의도’를 냉철하게 헤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BDA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인해 협상장 주변에서는 “물에 빠진 북한을 건져줬더니 이제는 아예 보따리마저 달라는 격”이라는 지적과 함께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미국이 BDA 동결자금을 인도적 사업 등에 쓰기로 한다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전액환수’라는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 갈수록 요구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어차피 미국의 결단이 내려졌고 금융 실무적인 절차를 거치면 곧 2천500만달러가 북한계좌로 이체되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BDA 자금이 손에 들어오기 전에는 협상에 불참한다’는 북한의 태도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6자회담 이틀째를 맞은 이날, 초기조치 이행과 상응조치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을 예상하고 협상장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 나타난 각국 대표단은 전체회의가 북한측의 참석 거부로 결국 무산되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BDA와 관련된 북한측 주장을 더듬어보면 이런 심정은 쉽게 납득된다.

당초 북한은 미국 재무부가 2005년 9월, BDA를 ‘돈세탁 우려대상’으로 지정한 뒤 극심한 혼란에 빠졌었다.

BDA의 북한계좌 50개에 들어있는 자금이 동결된 것은 물론이고 각국의 은행들이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회피하면서 외국에 나가있는 외교관이나 고위층 자녀에게 외화자금을 송금하는 일도 어려워졌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북한측은 미국을 상대로 ‘금융제재를 풀어달라’는 호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주장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강행, 그리고 이후 전개된 대치국면에서도 북한측은 사실상 수세였다.

미 상.하원 선거에서 여당인 공화당의 패배 등 여러 요인들이 맞물려 미국이 북한 압박을 포기하고 협상을 하기로 결단을 내리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몇차례의 베이징-베를린 북.미 회담을 거쳐 6자회담 재개가 결정됐고 자연스럽게 BDA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미간 협상도 진행됐다.

물론 이는 ‘협상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라’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런 상황변화를 북한이 놓칠 리 없었다. 북한측은 ‘협상의 진전’에 매달리는 미국 협상팀을 압박해들어갔다. 기존의 ‘금융제재를 풀어달라’는 추상적 요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BDA 계좌에 동결된 자금을 풀어라’는 구체적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는 후문이다.

힐 차관보를 중심으로 한 미국 협상팀은 미 재무부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해결’ 방침을 정하고 ‘합법계좌로 판명된 자금’을 돌려주려는 태도를 내비쳤다.

상대가 유연하게 나오고 있음을 간파한 북한은 즉각 요구수위를 `전액 해제’로 높였다. 물론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조치를 적절한 미끼로 활용했다는게 협상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어차피 풀어주기로 한 상황에서 ‘2천500만달러라는 소액’으로 인해 6자회담의 진전이 가로막힐 수는 없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듯 하더니 힐 차관보와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가 19일 오전 베이징에서 ‘BDA 북한 자금 전액해제’를 성명 형태로 발표했다.

북한은 한걸음 더 나아가 ‘BDA 자금이 우리 손에 전달돼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결국 6자회담은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이런 북한의 태도는 그동안 진행된 북한 핵협상은 물론 남북 협상에서 자주 연출된 장면이라는게 대북 전문가의 지적이다.

오히려 북한의 논리를 잘 주시해야 한다고 이 전문가는 강조했다. 다시 말해 미국이 ’30일내에 해결한다’는 발언을 했고 자신들도 이 시점에 맞춰 미국에 건너가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담을 하고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일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담을 했다는 주장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북한은 일단 가능성이 있다고 싶은 것을 한번 물으면 절대 놓지 않는 경향이 있다”면서 “따라서 북한과의 협상에서는 시일을 정해 약속한 것은 철저하게 이행하면서 반대의 논리로 북한을 시한을 정해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압박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는 ‘BDA 카드’를 너무 쉽게 포기한 미국의 전략도 한번쯤 생각해볼 만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즉, 북한에 단계별로 BDA 자금을 풀어주면서 북한의 조급함을 활용했어야 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BDA 자금은 북한 수뇌부의 통치자금 성격이 강해서 김계관 부상 등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입지가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어차피 북한과 협상을 하려 했다면 이미 활용하게 된 카드의 가치를 최대화하는 전략이 구사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BDA에 집착하면서 특유의 고집전술을 구사하는 북한을 보면서 “진정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앞으로도 갈길이 멀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핵협상으로 잔뼈가 굵은 ‘협상일꾼들’을 앞세운 북한이 주요 고비고비마다 ‘판을 흔들어버리는’ 전술을 구사할 때 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노련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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