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1절…“유관순이 대체 누구냐?”

북한에서는 3.1운동도 김일성 가문 우상화의 수단이다.

3.1 운동이 시작된 곳도 충청도 ‘아우내 장터’가 아니라 평양이고, 핵심 인물은 유관순 열사가 아니라 김형직(김일성의 아버지)이다. 김일성은 7살의 나이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3.1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북한은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3.1운동은 러시아 10월 혁명의 영향을 받아 수십 만 명의 서울시민이 반일투쟁을 시작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기술해 왔으나, 1980년대를 거치면서 “역사적인 3.1 인민봉기는 평양에서 벌어진 대중적인 시위투쟁을 첫 봉화로 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3월 1일 평양에서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시며 우리나라 반일 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 선생님께서 몸소 키우신 애국적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이 주동이 되어 수많은 각계각층 군중이 반일 시위투쟁에 일떠섰다”는 것이다.

3.1운동을 주도했던 민족 지도자 33인은 “철두철미 반민족적이며 반인민적인 비굴한 투항자”로 평가하고 있다. ‘탁월한 수령의 영도’와 ‘혁명적 당의 지도’가 없이는 혁명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유관순 열사에 대한 평가도 없지는 않으나, 한국의 평가와는 사뭇 다르다. 1999년에 펴낸 ‘조선대백과사전’에 의하면, “1919년 3.1 인민봉기 때 일제를 반대하여 용감하게 싸운 여학생”이라고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요즘 어린 학생들은 유관순이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북한 선전매체는 매년 3.1절이면 “반외세 투쟁”을 촉구하며 민족공조를 강조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또 “3.1 인민봉기 때 북한 주민들은 평양에 있는 중앙계급교양관의 ‘반일교양 전시장’을 찾아 3.1운동의 의의를 되새기고 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한다.

노동신문은 지난해 3.1절 사설에서 “지금 외세의 대조선(북한) 침략과 반통일 책동은 매우 발악적인 단계에 이르고 있다”며 “미국과 일본의 지배와 침략 정책을 배격하고 침략과 예속의 길잡이인 한나라당도 매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1980년대까지는 ‘3.1인민봉기 기념보고회’ 등을 개최해 왔으나, 1990년대 이후 별다른 행사를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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