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차 핵실험은 무엇을 바꾸고 있는가?

핵과 미사일만큼 안보위협의 현재성을 보여주는 실체가 또 있을까. ‘혹시나’ 싶은 실낱같은 바람은 ‘역시나’의 현실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법인가보다. 대놓고 핵 실험을 공언하다가 통일신보라는 드문 매체를 통해서 발뺌을 하더니, 그 이틀 만에 진행된 핵실험은 북한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대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예상한 세 번째 핵실험, 가히 3차 핵 위기라고 부를만한 현재의 상황은 과거 반복된 두 번의 경우와 무엇이 다른 걸까. 또다시 가중될 대북제재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연 얼마큼 효과적일까. 차기 한국정부가 주창한 ‘한반도 신뢰구축 프로세스’는 얼마나 현실성이 있던 것일까. 미국과 중국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일까. 질문은 꼬리를 문다.


이번 핵실험으로 북한을 둘러싼 안보지형이 탈바꿈했다. 관련국 분위기부터 다르다. 중국마저 과거와 달리 제법 싸늘하다. 왜 그럴까? 북한의 핵 개발 수준이 통제 가능한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반증이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동북아시아 권역의 국지적인 정치적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란 핵 문제와 연계된 전 세계 비확산의 중대한 문제로 접근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신뢰구축 프로세스’라는 이상주의적 로드맵을 지침으로 삼은 차기 한국정부의 현실인식은 여전히 타당한가. 한국정부는 북한 핵을 제어할 수단이 사실상 없음에도 항상 가장 높은 비핵화 목표를 국민에게 제시해왔다. 이제는 한국의 대북 정책, 핵 외교 정책의 최근 20년을 통렬히 반성하는 ‘백서’라도 발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핵무기를 가졌다는 것은 두 가지가 전제된다. 핵 물질(플루토늄, 우라늄)과 핵 기술. 핵 기술은 핵 개발 기술과 그것을 운송할 운반체계 기술 모두를 의미한다. 핵 실험을 통해서는 핵 개발 기술을, 미사일 발사로 그 운반수단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일련의 시도가 핵 확산의 요체이다. 이런 핵 야욕 국가가 늘어나는 것을 ‘수평적 핵 확산’이라 한다. 반면, 핵 기술이 높아져 더 작아지고 더 폭발력이 세지고 더 멀리 보내는 기술로 심화되는 단계를 ‘수직적 핵 확산’이라고 부른다.


미국을 위시하여 비확산을 관리해 온 기존 핵보유국의 전략은 핵 추구의 수요와 공급을 막는 해법에서 시작한다. 수요 대체 측면에서는 핵을 갖고자 하는 근본 원인을 대체할 당근(보상)을 제공하여 핵 의지를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경수로 제공과 핵 포기를 ‘딜(deal)’한 제네바 협정이 이에 해당한다. 공급억지 측면으로는 핵 보유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도록 핵 물질과 핵 기술의 반입을 차단하는 것이다. 중동지역에 대한 핵 억지전략은 주로 공급 커넥션을 근절하는 노력이 주된 방식이다.


이 두 가지를 제도화한 것이 국제 핵 레짐(regime)이다. NPT(핵확산 금지조약)는 수평적 핵 확산을 막기 위해 비핵 국가를 묶어두려는 국제조약이고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NPT가 현실적으로 작동하도록 감시하고 수직적 핵 확산을 통제, 지도(governance)하는 일을 전담하는 국제적 준거틀(framework)이다.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핵 관련(물질과 기술) 공급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핵공급국그룹(NSG), 쟁거위원회(Zangger Committee),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등이 1970~80년대 확립됐다. 가장 최근인 2003년 미국이 제안한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은 아예 핵무기뿐 아니라 핵무기만큼 위협이 되는 온갖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전 지구적으로 막자는 몸부림이다. 미국 단독의 세계 경찰활동만으로는 더 이상 안보위협을 예방할 수 없다는 고백인 셈이다. 다자안보협력은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번 북한 핵실험은 북한이 수직적 핵 확산 단계로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이 점이 과거 핵 위기와 차원을 달리하는 사태인식의 본질이다. 북한처럼 핵 물질 보유국(우라늄 매장량 세계 2위)이면서 자체 핵 기술을 확보한 사례는 없다. 당근(보상)에 의한 핵 의지 대체가 북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는 것은 진작 밝혀졌다.(시리아의 경우는 이것이 가능했다.) 미국과 국제비확산 레짐은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기술) 커넥션을 차단하지 못했다.


이제는 이란과 북한의 핵 커넥션이 미국안보의 최대 위협이 됐다. 단단한 한미공조로 북핵을 넘어서자는 구호는 이제는 공허하게 들린다. 유달리 이번 핵 실험에 대해서만큼은 군사적 무력시위를 강경하게 펼치는 우리 정부의 몸부림에 이런 사면초가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약속도 상호신뢰 위에 쌓인다. ‘한반도 신뢰구축 프로세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 할 수 없는 일(북한의 비핵화)을 하면 서로 믿음이 쌓일 거라는 전제는 순진해도 너무 순진한 발상이 아니었을까.


이제 그나마 북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행위자는 누구일까. 중국과 국제사회 그 자체이다. 중국이 북·중 파이프라인을 통해 매년 50만 톤에 달하는 최하질의 원유를 공급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 파이프라인이 막히면 북한은 숨통이 조인다. 북한의 체제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생명선인 셈이다. 중국이 대북제재 요청에 응해 이 라인으로 북한을 압박할 것 같진 않다. 중국은 언제나 결정적 순간에는 북한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수위는 전보다 높아졌다는 것이지 중국이 미국 중심의 비확산 노선에 동참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대북제재는 그 수위가 높아지는 수순으로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제재의 매카니즘은 똑같다. 북한으로 유입되는 재화와 금융에 대한 차단이 주된 수단이다.  2006년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계좌에 대한 미 재무부의 동결은 북한 정권에게 직접적인 압박이 됐다. 그러나 재화의 반입 막기가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회의적이다. 이미 북한은 철저히 고립된 체제로 60년을 버텨왔는데 새삼 더 어려워 질 것도 없다.


UN안보리가 주도하는 대북 경제제재는 사실 정치적 제재라는 점에서 각성 효과가 크다. 경제적 수단을 통한 정치적 압박, 이것이 경제제재(Economic sanctions)의 실체다. 이로 인해 북한처럼 대외경제의 상호의존성이 현저히 낮은 체제가 감내할 실질적 피해는 작다 할지라도 북한을 둘러싼 안보환경의 변화, 제재를 실행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 등 정치적 메시지의 파급력은 유의미한 것이다.


한국의 정책 옵션은 무엇이 남았을까? 그 선택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핵은 안 된다는 정의로운 외침만으로는 공허하고 한가하다. 차라리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여론이 이 사회의 뜨거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핵을 가진 상대에게 아무리 최신형 재래식 무기의 성능을 갖고 운운해봤자 엉성한 핵 위력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핵 위협의 현실일진대 무엇으로 한국은 독자 방어력을 구축할 수 있을까. 핵무장론은 정부가 직접 들고 나서기에는 안팎으로 너무 많은 장애물로 치이니 발언이 자유로운 정부 바깥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정부가 그것을 대외관계의 레버리지로 사용할 만큼 노련하길 바래본다.


바라지도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한국도 얼결에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 된 것만 같아 모골이 송연하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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