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평화체제 구축과 주한미군

북한이 6자회담을 앞두고 2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평화체제 구축을 주장하고 나섬에 따라 향후 북한이 주한미군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나타낼지 주목된다.

북한은 그간 분단의 비극을 초래한 외세의 상징으로 주한미군을 끊임없이 거론하면서 줄곧 철수를 요구해왔지만 간간이 미군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그 진의를 놓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외무성 담화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노정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주한미군 철수를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평화체제 구축은 북.미 양국의 적대관계 청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한반도에서 불완전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면 핵문제의 근원인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사라지게 됨으로써 북한 역시 자위권 차원에서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 및 핵불사용 약속을 통해 적대관계가 해소되면 주한미군은 더는 북한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북한이 미국 군대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승환 경희대 교수는 “평화체제 구축 단계에서 그간 북한을 가상의 적으로 삼았던 주한미군은 대북 억지력의 기능이 사라지면서 성격 변화가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이런 입장은 1992년 1월22일 뉴욕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에서 개최된 김용순 노동당 국제부장과 아널드 캔터 미 국무부 차관의 첫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리언 시걸 전 뉴욕타임스 한반도 담당 논설위원은 “미국이 북한의 적이 아니라면 주한미군도 위협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주둔해도 좋다는 식”이라고 간명하게 풀이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미군의 주둔을 영원히 용인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특히 북한이 이번 외무성 담화에서 평화협정 체결이 아니라 평화체제 구축을 6자회담의 목표로 제시한 것에는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는 시한에 대한 암시가 담겨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체제 구축은 기존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로 가기 이전의 잠정 단계를 말하며 이 단계에서 한반도 평화유지군으로서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리종혁 노동당 부부장은 1996년 4월 미국 조지아대에서 개최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 “주한미군이 평화유지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신뢰감을 북한에 심어줄 경우 북.미 평화협정 체결 등 구체적 변화가 있을 때까지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해도 좋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오히려 이번 6자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의 범위를 놓고 주한미군의 존재가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통상 특정 지역이 비핵지대로 규정되면 군사적 용도의 각종 핵무기의 배치.반입은 물론 경유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명분으로 핵동결 혹은 핵폐기를 결단하고 국제사회의 사찰을 전격 수용할 경우 소형 전술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주한미군 혹은 한반도에 기항하는 미군 핵잠수함에 대한 상호 사찰 문제가 충분히 불거질 수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