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제재-핵실험 패턴 왜 반복되는가

지난 해 12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40여 일 만에 만장일치 통과된 UN 안보리 결의안에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 성난 포문을 열었다. 22일(화) 대북 추가 제재 결의안(2087호)이 나온 직후 북한은 외무성 성명(23일), 국방위원회 성명(24일)으로 미국을 정조준하고 나선 것이다.


노동신문은 31일에도 “앞으로 발사할 여러 위성과 장거리로켓, 높은 수준의 핵실험이 미국을 겨냥한다는 국방위 성명은 천만군민의 확고부동한 의지의 반영”이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은 빈말을 하지 않는다”고 위협했다.


UN의 결의안 채택과 반박, 행동으로 받아치고 나오는 북한의 모양새는 사실 전혀 새롭지 않다.  세 차례나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핵 문제가 세상에 드러난 지 벌써 25년이 흘렀다. 그간 누적된 역사를 들여다보면 각국의 행동 패턴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북한의 핵개발 과정과 국제사회의 대응을 간략히 살펴보자.
 
북한의 핵 개발이 국제사회의 정식 이슈가 된 것은 1988년 프랑스 상업위성 Spot호가 영변지역에서 그 징후를 발견하고 나서부터다. 이것이 1차 핵 위기의 시작이고 경수로 2기 제공으로 북미간 빅딜이 이뤄진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가 당시 클린턴 정부의 미봉책이었다.
 
세월이 흘러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던 2002년 10월, 미 국무부 차관보였던 제임스 켈리의 평양 방문에 북한이 통보한 농축 우라늄 발언이 2차 핵 위기의 등장이었다. 마침 같은 달 말일 열렸던 미중 정상회담에서 처음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을 열자는 아이디어가 부상했다.
 
그 후 3년 동안 6자회담은 차수별·단계별이라는, 일반인들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조차 어려운 명칭과 개념으로 지속적으로 열려왔다. 그러나 2005년 2월 북한의 일방적 핵 보유 선언과 6자회담 무기한 중단 선언으로 ‘사실상'(de facto) 길을 잃고 만다.


북한은 그 사이 일관되게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해도) 핵 실험(2006. 10월 1차, 2009. 5월 2차)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006. 7월, 2009. 4월, 2012. 4월, 12월)를 실시해 왔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번갈아 시행하며 기술력을 높여온 것이다.


물론, 그 기술력의 최종 목표는 장거리 미사일로 운반 가능한 경량화·소형화한 핵무기의 확보이다.


이럴진대, 조만간 예상되는 3차 핵실험이 25일자 아사히 신문의 보도대로 ‘증폭 핵 분열탄'(boosted fission weapon)인지 아닌지 여부는 본질적 이슈가 못 된다. 여하간 북한은 핵 보유국의 완전한 지위를 인정받는 데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와 의지를 단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7년간 국제사회의 대응은 3차례의 안보리 결의와 6자회담에서 도출한 3개의 합의서(공동성명 포함)에 불과하다. 관계의 상호의존성과 신뢰도가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나는 악의적 ‘행동’을 선의의 ‘말’만 가지고는 막을 수 없는 법이다.


2005년 조지 W. 부시 정부 2기에 들어 발표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론’은 북핵 문제를 어쩌지 못하고 있다는 미국의 분노를 대외정책의 방향으로 내세운 솔직한 고백이었다는 편이 차라리 맞겠다. 요는 지금도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바뀌어야 하는 건 북한이 아니라 주변국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시간은 기약 없이 흐르고 북한의 핵 요구(demand)는 더 이상 말뿐인 협상으로는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데 미사일과 우라늄의 자급능력(supply)까지 갖춘 북한을 과거의 시선 안에 가두어 보려는 노력 자체가 부질없고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하다.


북한을 기존 NPT체제로 묶어두려는 시도는 이제 효력을 상실해 보인다. 순순히 그 안으로 들어올 북한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순진하거나 무지한 발상 아닐까? 그렇다면 북한이 줄곧 주장해 온대로 북미간 일괄 핵 타결만이 유일한 해결책일까?


중국의 대북 압박력은 여전히 유효할 테지만 안보리의 이번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건 더 이상 예전의 입지가 아님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애초에 6자회담은 미국을 대신해 중국이 주도권을 쥐는 장(場)이었을 뿐이니 말이다.


명민한 북한이 박근혜 정부가 정식 들어서기도 전에 핵실험을 실시하는 부정적 여파를 줄이기 위해 짧게 치고 빠지는 전술을 쓸까, 아니면 오히려 이 어중간한 시기에 단계별 핵실험으로 한국정부의 권력이양을 흔들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려는 포석을 노릴까는 두고봐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시간적 간격을 두고 계속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래나 저래나 뻔히 예정된 핵실험을 이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슬프지만 현실이다. 문제는 이후 대응이다.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미국도 중국도 북한을 설득할 일방적이고 독자적인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북한의 도전 앞에 마땅한(relevant) 응전은 찾을 길 없으니 작금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북한의 최근 기세라면 한반도 비핵화를 넘어(이번 국방위 성명으로 북한은 김일성 유훈인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포기했음을 명백히 했다.) 전세계적 핵감축 협상을 시작하자는 주장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겠다는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고 이제는 북한이 핵으로 미국과 맞장을 뜨겠다고 나오는 상황이니 미국의 무력감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정권이 다섯 번째 바뀌어 오는 동안 돈으로 ‘달래기’밖에 하지 못한 한국 정부로서야 더 말할 것이 없다. 상황은 계속 심각해져가고 있지만 해법은 갈수록 오리무중으로 빠져 들고 있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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