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래 선택과 대선 이후 새로운 대북정책

북한의 미래선택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체제를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것이다. 북한이 경제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발전도 해야 하지만 만약 국가발전이 체제를 위협한다고 판단된다면 과감하게 국가발전의 길을 포기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북한의 정치체제가 상당히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자신감을 갖고 개혁개방을 중심으로 하는 발전전략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북한의 정치체제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표면적인 모습일 뿐 본질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이 개혁개방의 제스처를 취한 것은 1984년 합영법 때부터였고 꽤 진전된 조치가 나온 것은 1991년 나선특구 지정 때부터였다. 그 때로부터 23년과 16년이 지났지만 크게 발전된 것은 없고 북한경제는 퇴보하기만 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부터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둘러싼 주변환경이 아주 좋아졌다.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10~15년 동안은 중국에 투자된 외국자본에서 화교자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것을 놓고 본다면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것은 북한의 개혁개방에는 대단히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할 때의 중국 1인당 화교자본 비율보다 북한 1인당 한교(韓僑)자본 비율이 수십배에 달하고 중국 개혁개방 초기 대만과 중국 사이가 아주 적대적이었고 홍콩 총독부와 중국 사이의 관계도 썩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던 것에 비해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지 지금 10년이 흘렀지만 현재의 북한의 상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다. 그 사이에 2000년 남북정상회담도 있었고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와 신의주특구 설정과 같은 꽤 과격한 조치들도 있었지만 이러한 조치들이 낳은 결과는 시장과 투자자들의 신뢰가 아니라 더 깊은 불신이었다.

현재 시장과 투자자들이 북한 정부나 김정일에게 보이는 불신은 사실 10년 전보다 훨씬 깊어졌다. 10년 전에는 북한이 매우 호전적인 국가이며 국제적인 룰을 잘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북한이 이렇게 일관성이 없고 정책집행력이 없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북한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외부로부터 불신을 얻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도 많은 불신을 얻고 있어 시장의 정상적인 발전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결과는 무엇에서부터 나온 것인가? 김정일은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으로 가려고 하는데 북한의 행정력이 붕괴되어서 어려운 것인가? 아니면 주위의 참모들이 이런저런 다른 방향을 조언을 하는 바람에 우왕좌왕하게 된 것인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 김정일 자신이 이러한 길을 걷고자 의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장의 불신을 얻은 것은 김정일이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설사 김정일이 그런 것을 예측했다고 하더라도 감수했을 것으로 본다.

많은 외부 관찰자들은 북한의 정치체제가 매우 안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김정일은 북한의 정치체제를 안정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김정일의 외부 접견자들과의 담화기록들을 보면 김정일의 이러한 우려들이 직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김정일은 북한체제가 외부의 충격에 아주 약하다고 본다.

지난 7~8년 동안 북한이 걸어온 길이 무계획적으로 보이고 좌충우돌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김정일이 원하는 길이었다고 판단된다. 물론 김정일에게 부분적인 착오도 있고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추진해왔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현재의 북한의 기본방향은 김정일이 바라고 지향해왔던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목표를 좋게 표현하자면 체제를 유지하는 조건에서 국가발전을 꾀하자는 것이지만 이러한 전략이 근본적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김정일은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북한은 78년의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이다.

북한은 일반적인 사회주의국가와는 크게 다르고 극단적인 사이비종교와 상당히 유사한 측면을 많이 갖고 있는데 김정일에게 고도로 집중된 권력, 김정일의 과도한 권위와 그 권위에 체제유지를 크게 의존하는 것, 그리고 이탈자나 의심하는 사람에 대한 가혹한 처벌 등이 비슷하다.

이러한 사이비종교는 얼핏 보아서 매우 견고하게 보일 뿐 아니라 일정 정도의 외부의 충고나 외부정보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무리 없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매우 빠른 속도로 붕괴된다.

북한체제가 김정일에게 집중된 권력과 권위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체제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김정일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북한체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무너질 수 있다.

김정일 개인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말하고 있는 증언은 현재까지 김정일 처조카인 이한영의 증언, 이한영의 어머니인 성혜랑의 증언,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 김정일의 경호원이었던 이영국의 증언의 4가지가 있었다. 이 중 성혜랑의 증언에서는 김정일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이한영의 증언의 신뢰도를 몇 배나 높여주고 있어 대단히 중요한 증언이다.

이 증언들에 나오는 내용은 외부의 사람들이 보아도 대단히 충격적인 내용들인데 김정일을 신처럼 받드는 북한 사람들이 본다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실제로 북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책들을 보여주면 대부분 매우 강력한 충격을 받는다.

이러한 정보들은 지금도 북한에서 소규모로 유통되고 있는데 설사 북한이 70년대식의 물샐틈없는 방어막을 구축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정보의 유통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하물며 지금의 북한은 부정부패가 극심해지고 행정망도 약해져서 이러한 정보의 유통은 과거보다 훨씬 용이해지고 빨라졌다.

만약 북한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간다면 이러한 정보는 몇 배나 더 빠른 속도로 유통될 것이며 북한체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될 것이다.

1980년대의 중국에서도 주로 북경을 중심으로 과거 정권의 비리에 관한 정보가 많이 유통되었는데 모택동의 비리도 어느 정도는 충격적이지만 김정일의 비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수준이었고 특히 그 당시의 중국 정권의 핵심부에 있던 사람들은 모택동에게 탄압받았던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이것이 별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정일의 경우에는 중국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 북한체제는 천천히 무너져가고 있지만 만약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선다면 붕괴되는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다. 북한이 체제유지와 개혁개방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낮다. 김정일이 죽거나 김정일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로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은, 일단 김정일의 권력과 권위에 의존해온 북한체제의 자생력이 있는지도 의문시될 뿐만 아니라 김정일이 없는 상태에서 나머지 사람들이 단결할 수 있을지는 극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김정일이 북한체제가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개혁개방이 극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명확한 만큼 본격적인 개혁개방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대신 외부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기 위해 개혁개방의 시늉은 계속 낼 것이다.

그리고 핵문제에서도 외부의 압력이 워낙 거세기 때문에 상당 수준의 양보를 할 가능성은 있지만 이를 체제유지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에 핵무기 자체를 근본적으로 포기할 가능성도 아주 낮다.

차기 정권이 어떤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는가에 대해서는 확률로서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여기서 토론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므로 이는 완전히 무시하고 그냥 대북정책의 당위의 문제만 이야기해보자.

대북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상당한 가능성이 있는 북한의 진로 중에서 남한과 북한의 주민에게 가장 유익한 길, 그리고 한반도의 안보에 가장 유리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현실적 가능성이 있는 길을 내다보고 대북정책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외부조건만 잘 조성되면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고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 아래에서 짜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둘 다 잘못 되어 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김정일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도 아주 낮으며 설사 김정일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낮다.

따라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그 출발부터 잘못 되어 있다.

북한체제의 붕괴가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남한 주민과 중국인 그 외 관련국 모두에 대단히 큰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은 명확하다. 북한체제가 붕괴되지 않고 중국과 같은 점진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보다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체제는 조금 빠르고 늦은 차이가 있을 뿐 개혁개방을 추진해도 붕괴되고 추진하지 않아도 붕괴될 것이다. 북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붕괴된다는 것을 전제로 짜야 한다. 붕괴되기 전에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지, 붕괴를 빨리 촉진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늦추는 것이 좋은지, 붕괴될 때 그리고 붕괴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등이 대북정책의 중심에 와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북한이 헌법상으로는 대한민국의 영토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외국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민간단체가 아닌 정부의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외교적 예의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민간단체가 아닌 정부에서 이런 식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할 필요는 없다. 공개적으로는 아니지만 정부 내부적으로는 이런 문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놓고 대북정책을 짜는 것,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했을 때나 김일성이 죽었을 때나 식량난으로 대량의 탈북자가 발생했을 때 북한 주민들의 민심이반이 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조기붕괴를 예언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로 민심이반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데도 오히려 북한체제 붕괴의 가능성을 낮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합법적으로 중국을 오가는 북한의 공무원이나 상인이나 친척방문자들, 비합법적으로 중국을 오는 일반 탈북자나 밀무역업자들에게 일관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민심이반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 지원을 하고 투자를 하는 것도 이러한 것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은 회복불가능한 말기 암환자와 같은 존재이다. 회복불가능한 말기 암환자에게 의학적 자원이나 인력을 과도하게 지원하거나 투자하는 것은 자원, 인력의 적절한 배분이 아닐 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그 환자에게 고통만 가하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북한에 대한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을 넘는 각 종 지원이나 투자는 북한 주민의 고통만 연장시키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대북정책의 기본은 봉쇄와 압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을 일정 정도 수준까지만이라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는 정책도 아주 나쁜 정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정책은 항상 김정일의 교묘한 계략에 막힐 우려가 매우 크긴 하지만 김정일이 모든 일을 치밀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나이가 들면서 실수를 할 확률도 높아졌기 때문에 나름대로 뭔가 수확을 기대할 수도 있는 정책이다.

가장 나쁜 정책은 어정쩡한 정책이다. 물샐틈없는 강력한 봉쇄와 압박을 가하든지 아니면 유연하면서도 집요하게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강제하든지 해야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정책을 펴면 결국 김정일 정권의 내성만 강화시켜줄 뿐 체제변화도 안 되고 북한의 사회경제발전도 안 되고 북한 주민의 고통만 연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현실정치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국민들의 눈치를 보게 되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게 되면 이러한 어정쩡한 정책적 입장에 서게 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에서는 북한에 대해 ‘확고한 봉쇄와 압박’을 할 것인지 아니면 ‘유연하면서도 집요하게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강제’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정해야 하며 정부의 입장이 일단 확고하게 정해지면 민간단체들에서도 조용한 이론적 비판이나 토론을 계속 해나가되 정부 정책을 흔드는 것으로 보일 우려가 있는 시위 같은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정부 정책을 흔들어서 아무런 득이 될 것이 없다.

만약 ‘확고한 봉쇄와 압박’을 하는 것으로 정해진다면 중국과의 긴밀한 협조가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중국의 협조 없이는 그 어떠한 봉쇄도 안 되며 압박도 강력해질 수 없다. 따라서 상당한 외교적 자원을 중국과의 외교에 투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긴밀한 한미공조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기본 방향을 정부가 세우더라도 정부가 너무 앞서 나갈 필요는 없다. 외교적으로 좀 난감하거나 국내정치적으로 좀 곤란한 문제 등은 민간단체가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아서 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단체는 본질적으로 서로 너무 밀착해서는 곤란하고 적절한 긴장과 견제와 상호비판이 필요하지만 대북문제만큼 정부와 민간단체의 적극적인 역할분담이 절실한 분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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