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목가적 풍경 뒤에는 공포”

목가적 풍경화에 숨어있는 ‘다빈치 코드’는 바로 공포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독일어로 발행되는 일간지 ‘데어 분트’는 최근 장문의 평양발 르포 기사를 통해 북한이 한때 놀라운 경제성장을 구가하면서 남한보다 앞섰으나 지금은 후진 농업국가로 퇴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부르노 랑겐슈타인 기자는 “목가적 풍경 뒤의 공포’라는 제하의 르포 기사(1월12일자)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폐쇄정책으로 주민들은 세계가 얼마나 극적으로 변했는지를 모르며 일상생활에서 부정적인 사고는 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데어 분트’에 실린 르포 기사의 요약
『북한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나라다. 황해도의 들판은 녹색 물결이 일고 산비탈에서는 농부들이 낫으로 추수를 하고 있다. 화려한 꽃밭 너머로 기와 지붕의 농가가 보인다. 개울에서는 아이들이 떠들며 놀고 있고 어른들이 고기를 잡거나 미역을 감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겉으로는 목가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올해의 수확량은 주민들을 제대로 먹이기에는 충분치 못하며 외부의 구호물자는 지금도 들어오고 있다.

동행한 북한 관리에 의하면 이곳의 농민들은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한다. 예전에는 농기계로 이용했는데 지금은 연료와 부속품이 모자라 손으로 농사를 지고 있는 탓이라는 것. 농촌 뿐만 아니라 산업 전분야도 같은 이유로 마비 상태에 빠져있다. 북한은 10년 전만 해도 공업국이었으나 현재는 농업국으로 퇴보했다. 북한 내에 경작 가능한 농지는 불과 20%에 그치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북한은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일찍 이 공업화를 시도한 국가였고 가장 높은 성장률을 달성한 국가로 공산권 국가 대표들이 한 수 배우기 위해 방문할 정도였다.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자립경제, ‘영원한 지도자’ 김일성과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의 우상화를 위한 ‘주체사상’ 등 북한식 공산주의 비전은 모든 주민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다.

갑작스러운 김정일 초상화 철거에 대해 외부세계는 체제 전복 가능성을 추측했으나 북한 국영 방송은 “태양을 하늘에서 끌어내릴 수는 없는 법”이라며 이를 부인하고있다. 2천300만 주민은 주체사상을 숙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나라에서 야당이란 있을 수 없다.

주체사상에 입각한 통제경제정책은 주민들에게 충분한 먹거리를 제공하지 못했다. 이는 90년대 중반의 홍수와 가뭄에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북한에 머무는 외국 의료진에 따르면 10여 년 전부터 양곡 부족 현상이 있었고 이로 인해 약 200만명이 기아로 사망했다고 한다.

북한 내 유엔아동기금(UNICEF) 관계자는 북한 정부의 잘못된 대규모 투자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보고 있다. 현재 북한의 5세 미만 영아들 가운데 40%가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북한은 주체사상으로 확고히 무장된 약 100만의 대군을 보유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관리는 군사적으로 중국과 일본, 러시아, 미국의 입김 아래에 있는 남한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유럽에 가본 적이 있다는 또 다른 고위 관리는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경제개발 뿐”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인들은 주체사상이야말로 만물의 척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평양의 상징인 주체사상 기념탑에는 세계 90여개국에서 보낸 지지와 찬양의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연도를 보자니 대부분 7-80년대의 것이며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

주민들은 철저한 폐쇄정책으로 세계가 얼마나 극적으로 변했는지를 모르고 있다. 30년 전 외국에 유학한 북한 학자들은 지금까지 이국 전문서적을 접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고급 간부들은 e-메일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인터넷 사이트에는 접속할 수가 없다. 당국의 통제하에 놓인 빈약한 정보 때문에 외국 경험이 있는 고급 간부들조차도 외부세계를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착각과 그릇된 기대를 가지게 된다.

지난 87년 평양에 높이 305m로 아시아 최고인 호텔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 사례. 4년만에 건설은 중단됐고 지금은 녹슨 크레인 한대가 건물 옥상에 얹혀있는, 흉물로 변해가고 있다.

동해안에는 전기가 흐르는 긴 철조망이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남방한계선의 북쪽 곳곳에는 지뢰가 묻혀 있고 주민은 거의 없다. 해안의 모래밭 바로 옆에는 녹슨 단선 철로가 남아있다. 내륙쪽에 또 다른 철도가 놓여있으며 북한은 여기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이에 기대하는 근거는 일본의 물자들이 이 철로를 통해 블라디보스톡이나 베이징을 거쳐 유럽으로 물건을 운반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물자들이 열차로 수송된 적은 없다.

한국 관광객들이 선박을 통해 북한을 여행하고 있는 것은 북한과 남한 현대그룹 회장의 거래 덕분. 금강산에는 표훈사라는 고찰이 있으며 북한의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국가 유산으로 잘 보존되고있다. 이는 공산주의 국가인 몽골에서 승려들을 학살하고 모든 사찰을 파괴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북한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인권 단체들은 승려들이 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종교 행사는 제한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갖가지 모순의 일례에 불과하다.

얼마전부터 농민들에게 약간의 사경지를 허용하는가 하면 길거리에는 물건을 가져다 파는 행위도 용인되고 있다.

외국 구호단체가 보낸 비료는 종전까지만 해도 기증자 표시를 지우곤 했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북한 정권은 구호품을 받은 마을 사람들에게 정치를 잘해 벌어들인 선물로 치부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인들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외국인과 말하기를 꺼려 한다. 동행한 북한 관리와 저녁에 호텔 바에서 만나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를 물어보자, “그렇다. 우기가 다른 나라들처럼 핵무기를 못 가질 이유가 무엇이냐”고 대답했다.

탈북자들이 비인간적인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지를 물어보자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감옥이 있고 정치범들만이 그 곳에 수용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감옥이 있는지, 그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대꾸했다.

이는 많은 주민들이 수용소에 대해 알고 있다고 보고 있다는 북한 내 외국인들의 생각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북한은 외국을 불신하면서도 점진적인 개방을 시도하고 있고 관광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광 관계 기관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은 “우리는 유럽인들이 많이 오길 바란다. 절 같은 곳에서도 숙박해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다른 지역들은 외국인들에게는 여전히 출입이 금지된 상태로 남아있다./제네바=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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