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권력공백’ 심각하다

▲ 좌로부터 연형묵(2005년 사망), 장성택(숙청), 고영희(2004년 사망)

자타가 공인하는 ‘김정일의 오른팔’ 연형묵이 죽었다.

지난 6월 6일 노동신문은 자강도당 책임비서를 ‘박도춘’으로 소개했다. 그로 인해 연형묵이 자강도당 책임비서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이 대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연형묵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면서 군수산업시설이 밀집된 자강도의 살림을 맡아왔다. 김정일이 그만큼 연형묵을 신뢰했다는 증거다. 몇 번 좌천과 강등의 불운을 맞기도 했지만 연형묵은 그동안 김정일에게 직언(直言)을 할 수 있는 최측근 인물중 하나로 알려져 왔다.

연형묵이 와병 중에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직위에서 물러남으로써 병세가 심각한 상태에 이른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지난 22일 “불치의 병”으로 사망하였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부음을 전해왔다.

정신적 버팀목, 혈연적 동맹자, 실무적 보필자들과의 잇단 이별

최근 몇 년 사이 김정일은 측근에서 오랫동안 함께 했던 중요한 인물들을 연달아 잃었다.

① 정신적 버팀목 ‘고영희’ 사망

우선 1980년대 이후 함께 살아온 것으로 알려진 애첩 고영희를 2004년에 잃었다.

‘사모님’으로 불리면서 우상화되려는 작업이 막 진행 중이던 때에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 그가 낳은 아들 정철은 그동안 김정일의 후계자로 물망에 올랐으나, 세자(世子)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던 중전(中殿) 마마가 사라짐으로써 후계구도가 명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김정일이 장시간 같이 살았던 여인은 성혜림과 고영희이다. 성혜림은 김정일의 연상(年上)으로, 어머니와 닮은 부분이 많아 모성애에 끌려 동거했다는 설이 우세하다. 성혜림은 1980년대 초반부터 정신질환을 앓아 모스크바 등지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2002년 5월 사망했다.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은 1996년 서방국가로 망명하였으며, 조카 이한영은 1982년 남한으로 망명했다가 1997년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피살됐다.

고영희는 성혜림의 뒤를 이어 김정일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해줬다. 그런 고영희가 사라짐으로써 김정일은 노년에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영희의 동생 고영숙의 부부는 2001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② 혈연적 동맹자 ‘장성택, 김경희’ 숙청

최근 김정일은 권력 구축과정에 ‘1등 공신’이었던 장성택을 스스로 잘라냈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으로 ‘3대혁명소조’를 이끌면서 김정일 유일체계를 구축하는데 앞장서 왔으며 1995년부터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직을 맡아왔다. 그런 장성택이 2003년부터 중앙당 청사에 출근하지 못하고 자택에서 근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대북소식통들은 북한에서 장성택을 ‘곁나무’로 부르면서 그와 함께 사진을 찍거나 식사를 같이 한 적 있는 사람이라도 모두 조사받아 숙청되는 중이라고 전해왔다. 장성택도 모처에 연금된 상태라고 한다. 북한에서 숙청되었던 인물이 복권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곁가지’나 ‘곁나무’라고 확실한 종파(宗派)의 이름을 만들어 숙청한 세력의 핵심인물을 복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장성택의 숙청이유는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고영희 측의 공격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장성택의 공백을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승계하여 맡고 있으며, 리제강은 고영희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장성택의 숙청으로 인해 김경희도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2004년에는 프랑스에서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는 등 건강 상태도 극히 좋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과 김경희는 아직 죽은 것은 아니지만 김정일의 오랜 ‘혈연적 동맹자’들이 사라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③ 실무적 보필자 ‘김용순, 원응희, 연형묵’ 사망

김용순과 원응희, 연형묵은 김정일을 실무적으로 보필하던 측근들이었다.

김용순은 노동당 대남담당비서로 대남사업분야에서 김정일의 오른팔이었다. 원응희는 인민군 보위사령관(보위국장)으로, 6군단 사건 등 반체제 사건을 적발, 잔인하게 처벌하여 김정일의 신임을 높이 받은 인물이다. 연형묵은 김정일의 현지지도와 비밀파티 등 모든 활동에 빠지지 않고 함께하는 ‘김정일의 그림자’였다.

김용순은 2003년 6월 16일에 교통사고를 당해 장기 입원치료 중 10월 26일 사망했다. 고영희 생일파티에 참석한 후 만취상태에서 직접 차를 몰고 돌아오다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그가 죽은 후 ‘빛나는 삶의 품’이라는 기록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원응희는 2004년 5월 지병으로 사망했고, 연형묵도 이번에 사망했다. 대남, 호위, 군수산업을 관장하던 3대 핵심측근이 줄줄이 사라진 것이다. 물론 김용순의 뒤는 현재 림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이 이어받아 활약 중이고, 원응희의 자리는 김원홍이 이어받았다. 연형묵의 후임자로는 국방위원이며 당중앙위 군수담당 비서인 전병호가 대신하는 것이 역할상으로는 맞지만 올해 79세로 고령이다.

고령자들이 이끄는 나라 …… 세대교체 더뎌

연번
이름
전직
현직
1
김정일
국방위원장
국방위원장
2
오진우
국방위 제1부위원장
사망(1995)
3
강성산
정무원 총리
숙청(추정)
4
리종옥
국가부주석
사망(1999)
5
박성철
국가부주석
활동 없음
6
김영주
국가부주석
활동 없음
7
김병식
국가부주석
사망(1999)
8
김영남
정무원 부총리, 외교부장
최고인민위 상임위원장
9
최 광
인민무력부장
사망(1997)
10
계응태
정무원 부총리
근신-치매
11
전병호
국방위원
최고인민회의 자격심사위원장
12
한성룡
당중앙위 경제정책검열부장
최고인민회의 예산위원장
13
서윤석
중앙인민위원
숙청
14
김철만
국방위원
활동 없음
15
최태복
당중앙위 교육담당 비서
최고인민회의 의장
16
최영림
중앙검찰소장
활동 없음
17
홍성남
정무원 부총리
함경남도 책임비서
18
강희원
정무원 부총리
사망
19
양형섭
당 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20
홍석형
국가계획위원장
함북도당 책임비서
21
연형묵
정무원 총리, 자강도당 책임비서
사망(2005)
22
리선실
민민전 부위원장
사망(2000)
23
김철수
송두율(추정)
독일
24
김기남
당 중앙위 선전담당 비서
조평통부위원장
25
김국태
당 중앙위 간부담당 비서
간부담당 비서
26
황장엽
당 중앙위 국제담당 비서
망명(1997)
27
김중린
당 중앙위 근로단체담당 비서
28
서관히
당 중앙위 농업담당 비서
처형(1997)
29
김용순
당 중앙위 대남담당 비서
사망(2003)
30
김 환
부총리

위 표는 1994년 김일성 사망시 장례위원 1~30위 명단이다. 이는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물려준 ‘인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대개 김일성 시대의 인물들이기 때문에 고령이긴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은 김영남, 전병호, 최태복, 홍성남, 김기남 정도이다. 이들도 대개 늙어서 상징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며, 대다수는 사망했거나 와병, 혹은 숙청되거나 망명했다. 김정일은 아버지의 유산 대부분을 잃은 것이다.

위원장

김정일

63세

제1부위원장

조명록

75세

부위원장

연형묵

사망

리용무

82세

위원

김영춘

69세

김일철

72세

전병호

79세

최용수

미상

백세봉

미상

▲ 現 북한 국방위원 명단과 나이

현재 국방위원회 구성을 보면 조명록이 제1부위원장, 연형묵과 리용무가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번에 연형묵 장례위원장을 맡은 조명록은 만성신부전증으로 인해 여러 차례 외국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도 언제 운명을 달리할 지 모른다. 리용무는 올해 82세로 국방위원 가운데 최고령이다. 그의 건강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국방위원인 김영춘(69세), 김일철(72세), 전병호(79세)도 모두 고령이다. 최용수와 백세봉은 나이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김정일보다 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더라도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의 평균 연령이 높은 것은 북한 체제의 활력을 저해하는 장애요소로 꼽히며, 세대교체가 대단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방위원은 아니지만 권력의 요직을 맡고 있는 김영남(77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태복(75세,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80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김기남(79세, 조평통 부위원장), 김중린(81세, 당중앙위 비서) 등 핵심인물들이 모두 70대 후반~80대 초반이다. 이렇게 고령자들이 이끄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연형묵 사망으로 급격한 자리이동이 있지는 않겠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조명록, 리용무와 고령의 국방위원 가운데 한두 명이 연형묵의 뒤를 따를 경우 김정일은 상당한 간부 공백 상태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예측이 불가능한 북한 권력 내부의 불안정성이 더욱 심화되어가고 있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