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구호발표는 국가적 대행사

▲ 3일 평양에서 진행된 공동구호문 관철 군중대회

북한은 2일 올해 노동당 창건 60돌(10. 10)을 맞으며 160개의 구호를 쏟아냈다. 3일에는 평양시 10만 군중이 참가한 가운데 공동구호 관철을 위한 군중대회가 열렸고, ‘100일 전투’에 돌입한다고 선포했다.

이에 호응하여 신의주, 평성, 사리원 등 각 도, 시, 군 등도 5일 연쇄적으로 군중대회를 열고, ‘100일 전투’에 돌입했다고 6일 <노동신문>은 보도했다.

‘100일 전투’에서 노리는 목적

160개로 된 공동구호문은 ▲반미 대결전 승리 촉구 ▲일본 과거죄행 결산 ▲자주통일 전환적 국면 설정 ▲선군사상 무장 ▲정치, 사상, 군사, 경제, 문화, 조국통일의 여러 분야의 과업들이 명시되어 있다.

이중에서 “우리 인민은 지금 유구한 민족사와 영광스러운 우리 당의 선군혁명 역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구호를 맨처음 강조, 선군 노선에 역점을 두었다.

이번 ‘100일 전투’에서 북한이 노리는 기본목적은 미국과의 대결을 앞두고 내부결속을 강화, 경제적으로 당면하게 급한 식량문제를 풀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00일 전투’ 기간은 당창건 기념일인 10.10일까지, 정확히 말하면 7월 3일부터 100일 전투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구호 + 전투= 김정일의 경제 단골메뉴

1954년 4월 노동절(5.1절)을 맞으며 첫 구호가 발표된 후 북한은 지금까지 12차례 구호를 발표했다. 구호는 70년대 김정일 체제에 들어와 많이 생겨났고, 그 효과성도 검증되었다.

김정일은 구호+전투 형식의 운동을 주로 벌인다. 후계자로 등장한 70년대에 ‘70일 전투’를 벌여 크게 인정받은(?) 후 ‘속도전’ ‘돌격전’ ‘섬멸전’식의 경제활동이 주류를 이어왔다. 경제운영 방식도 김정일의 성격과 많이 관계된다.

성미가 급한 김정일은 눈에 띄는 가시적인 성과를 좋아한다. 경제도 ‘속도전’식으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70일 전투’는 1974년 10월 9일 당 중앙위 및 정무원 책임일꾼, 도당 책임비서들이 참석한 협의회에서 김정일은 ‘70일 전투’를 지시. 그 해 12월 말까지 진행되었다.

그 결과 공업총생산액은 11월 과제를 114%, 12월 과제를 152% 초과달성하는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70일 전투기간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노력영웅칭호를 수여받았고, 김정일은 당내에서 경제관리능력을 인정받는 동시에 75년 2월15일 그의 생일 33돌을 맞으며 공화국 영웅칭호가 수여되었다.

불황탈출, 내부결속 강화용

과거 북한은 ‘00일 전투’라는 이름을 붙여 운동식 경제활동을 수차례 벌여왔다. 전투의 계기는 큰 명절의 꺾이는 해(5주년, 10주년)에 구호를 발표하고 진행한다.

실례로 70년대에는 ‘70일 전투’ ‘100일 전투’, 80년대에는 ‘200일 전투’가 벌어졌고, 이번 당창건 60돌에는 ‘100일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당 중앙위 구호는 북한이 내외의 정세가 어렵거나, 특별한 명절에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발표한다. ‘투쟁방향’을 제시하고 체제결속 및 주민동원을 위한 대내 선전선동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다.

더욱이 김정일이 집권하기 시작하면서 구호가 대대적으로 발표되어, 현재 북한의 기본 경제건설방법으로 되어왔다. 집단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북한에서 중앙- 지방- 말단 단위까지 통일적으로 지도하고 집행하기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짧은 기간 내에 가시적 효과를 본다.

운동의 목적은 단기내의 수령에 대한 충실성 주입, 가시적 경제효과를 따내는 데 있다.

하나의 전투로 간주, 상벌관계 뚜렷

남한사람들은 구호라고 하면 노조단체가 외치는 구호나 대학가에 세워진 피켓 정도로 생각하지만, 북한의 구호는 하나의 큰 정치경제적 의의가 부여된 전 국가적인 행사다.

평양과 도, 시, 군에 이르기까지 ‘공동구호를 철저히 관철하자’ 요지의 군중대회를 열고 맹세를 다진다. 간부들이 솔선수범하여 아침 7시에 출근, 현장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에우며 과제를 수행한다. 전투기간중 일체 휴가나 조퇴, 지각은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간부들이 매일 작업총화를 하고 미달된 과제에 대해서는 그날로 수행하도록 요구하고 매일 점검(총화)한다. 총화 끝에는 국가수훈, 상벌을 안긴다. 전투 끝에 계획을 미달시킨 공장 지배인들은 감옥에 보내기도 한다.

70년~80년대에는 원료와 자재, 에너지가 공급되어 할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공장에 할 일이 없다. 이번 ‘100일 전투’는 일감이 없으면 논두렁에 나가 풀 한 포기라도 뽑아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캠페인식 경제활동은 양적(量的)으로는 달성할 수 있으나, 질을 보장할 수 없다. 단기적인 효과뿐이다. 김정일이 벌인 ’00일 전투’는 이 때문에 모두 실패로 끝났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