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북한의 의도적 무단방류로 야영객 6명이 사망한 ‘임진강 참사’는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김정일 정권에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규범적 관점에서 응당 해야 할 일이지만 유효한 대책은 아니라는 점, 둘째, 북한이 자행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도발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만이 현실적으로 한국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 셋째, 한국은 김정일 정권의 ‘저강도 도발’을 실제적으로 응징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임진강 참사가 주는 교훈들보다 더 중요한 점은 이 도발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즉 근자에 강경과 온건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김정일의 대남전술이 갖는 의미다. 즉 지금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은 북한식 도발의 종말처리가 아니라 근원적 처방이다.
‘역도 패당 리명박’에서 조문을 빙자한 특사 파견, 개성에 납치하고 있었던 유씨 석방, 연안호 선원 석방, 그리고 황강댐 4000만톤 무단방류에 이어 개성공단 임금인상 요구 포기 등, 그리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우라늄 농축기술의 완성 통고는 정상국가가 아니라 충동적이고 분열적 인간의 행태처럼 보인다.
정부와 언론은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대남정책을 북한 내부에서 강경파와 온건파간의 갈등에서 찾거나,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장담해온 북한정권이 갖는 초조감의 반영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과거에도 수없이 들어본 ‘믿거나 말거나 해석’이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을 둘러싼 정세가 유동적”이라고 보면서, “북한이 결국 유화적 자세로 나올 것이며 이런 상황이 북핵문제 해결에도 전환점을 가져올 수 있고, 북한이 핵포기를 결심하면 대규모 북한경제 재건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하였다. 한 마디로 목마른 자는 우물을 팔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II.
그러나 김정일 정권의 ‘강온교차 전술’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견해는 순진하다(naive)고 보인다. 김일성 이래 북한은 항상 이중적 대남전술을 두루두루 사용해 왔다. 1950년 6월 남침 직전 ‘조만식 先生과 이주하·김삼룡 교환 제의’ 및 ‘남한 국회와 북한 최고인민회의에 의한 평화통일 방안 논의’를 통한 ‘위장평화전술’, 무력통일전략과 동시에 명목상 남한체제를 인정하는 고려연방제를 통한 적화통일의 ‘우회전술’, 한국의 쌀 지원 수송 선박에 인공기를 게양하라는 배은망덕(背恩忘德)으로 시혜자의 ‘기(氣)꺾기 전술’ 등이 그 일부이다. 그러나 북한의 강온교차전술 중에서 우리 기억에 가장 남는 사건은 김대중 정권시절, 그것도 2002년 6월 29일 자행한 서해도발이다.
서해도발은 ‘햇볕정책의 창시자’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이 6․15 공동선언을 한 지 불과 2년만에, 그것도 세계인의 축제였던 월드컵 기간 중에 일으킨 야비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사변이었다. 김대중 정권하에서 ‘잘 나가던 남북관계’에 환호하던 한국의 진보세력은 서해도발을 보고 “어떻게 이럴 수가?”하는 충격을 받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친북좌파 세력들은 김정일 정권의 입장을 두둔하고 이해하는 나름대로의 ‘서해충돌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서해충돌은 우발적이라느니, 사건은 김정일이 아니라 현지 사령관이 명령했다는 등의 억측이 그것이다.
III.
그러나 북한의 강온교차전술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것은 한국의 지도자를 딜레마 상태로 몰고 가 결국에는 자신의 수족으로 만드는 ‘심리전술’이 되었다. 한국의 대통령이라면 누구나 김정일 따위의 술수에는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번 ‘미북 양자회담 개최 합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초강대국 미국도 강온교차의 전술로 요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또 지금까지의 전적(戰績)으로 보아 결코 그것은 과장이 아니다.
특히 오바마 정부의 주변에는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판 햇볕정책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일단 북한의 강경전술에 밀리고 온건전술에 끌려 북한에 양보를 하기 시작하면 대북전략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부시정권이 이 점을 증명해 주었다.
따라서 ‘굳건한 신념’을 바탕으로 햇볕정책을 펴온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김정일이 요리하기란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었다. 아마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을 다짐한 한국의 대통령들은 양측이 순탄하게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게 되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북한을 개방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의 지원은 모두 받고, 그러면서도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자신이 틀어쥐기 위해서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식의 남북관계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즉 김정일은 남북관계를 잘 진척시킬 듯 행동하여 챙길 것을 챙기면서도 서해교전과 같은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도발’을 한다. 이때 보수의 반대와 불법송금 등 ‘만난(萬難)’을 무릅 쓰고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왔던 한국의 지도자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지금까지 짝사랑하여 왔던 김정일 정권의 배은망덕을 응징하던지 안 하던지, 모두 문제이기 때문이다. 응징하지 않자니 북으로부터 엄청난 ‘수모’를 감내해야 하고, 응징하자니 지금까지 쌓아온 ‘공덕’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코 북한의 도발을 응징할 수가 없었다. 응징의 수단도 모두 포기하였지만, 무엇보다도 ‘햇볕정책은 실패했다’, ‘내가 틀렸다’라는 결론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친북좌파들이 때맞추어 북한의 도발을 견강부회(牽强附會)식으로 정당화하면, 두 전직 대통령은 설사 이 정당화가 엉성하더라도 ‘믿고 싶기 때문에 믿게 되었다’. 2002년 서해도발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산화(散華)한 해군장병의 장례식이 아니라 일본으로 월드컵을 구경하러 떠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1차 핵실험 직후 잠시 북의 도발에 회의를 느꼈지만 곧 바로 원래의 친북노선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김정일로부터 크고 작은 수모를 몇 번 감내하게 되면, 대북정책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을뿐더러, 가까운 미래에 북한이 바뀔 것이라는 ‘주관적 확신’에 점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 마디로 김정일과의 ‘치정(癡情) 관계’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이처럼 치정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이들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의연하게 일관된 대북정책을 추진한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2009년 9월 6일 임진강 참사가 난 바로 다음날, 한국에서는 ‘한반도평화포럼’이라는 주목할 만한 단체가 출범하였다. 여기에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시절의 통일부 장․차관은 물론, ‘스파이 두목’이라고 불리는 전직 국정원장들도 참가하고 있다. 선공후득(先供後得)으로 유명해진 임동원이 바로 이 단체의 대표로 있다. 이들은 김정일이 어떤 도발을 하여도 북한을 옹호할 수 있는 논리로 무장되어 있고,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어떠한 증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IV.
다른 한편 ‘비핵개방 3000’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에게 먼저 선결조건을 내세웠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하여 왔기 때문에 앞의 두 정권처럼 김정일의 심리전술에는 ‘아직’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도 “북한이 핵포기를 결심하면 북한에 대대적인 경제원조를 하겠다”고 말하여 왔다. 바꿔 말해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변화 조짐을 취임 이후 계속 사실상 ‘애타게’ 기다려 왔다는 이야기다.
즉 김정일이 “핵포기를 결심했다”는 의사를 밝힐 경우, 실제로 북핵이 폐기되기도 전에 대대적인 경제원조를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리고 그 후에 북한이 그 어떤 이유를 들어 핵폐기를 진전시키지 않을 경우, 이명박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 다름없는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임기 중에 대북정책을 전환할 경우, 다시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떠한 대북정책이 필요할까? 대책이 없다는 점을 “의연히 일관된 대북정책을 견지한다”는 말로 포장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북의 장단에 그때그때 놀아나는 것으로 한국이 지향해야 할 통일의 길이 아니다.
V.
사실 김정일이 한국의 지도자와 엘리트를 심리전술로 훈련시켜 철저한 친북좌파로 만드는 방법은 수령체제 북한에서 늘 사용되어 왔다. 수령은 그의 수하(手下)를 벤츠와 달러로 포상하면서, 동시에 최측근이라도 이따끔 귀양이나 수용소로 보내 지배집단 전체를 무조건적 복종상태, 즉 수령이 그 어떤 고통을 주더라도 참으면서 수령을 믿고 따르게 되는 노예로 만들어 왔다. 북한의 강온교차 전술은 기본적으로 수령의 내부통치술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김정일의 강온교차전술은 강한 독재체제에서만 가능하다. 그가 마음대로 냉탕, 온탕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이유는 북한 내에서 그를 제어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북한의 자의적 행동을 남쪽에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김정일의 심리전술에 한국의 지도자와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엘리트들은 더욱 더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김정일의 심리전술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의 자의적 도발이 바로 북한 내부에서 체제기반을 잠식하게 만드는, ‘되먹임(feedback)’ 장치가 가장 효과적이다. 즉 김정일의 행태가 북한주민의 강한 반발을 일으키도록 만드는 소통회로를 북한에 만드는 것이고, 그것은 다름 아니라 김정일의 행태를 실시간으로 북한 내부에 알리는 정보유입 장치를 강구하는 것이다.
서해도발과 임진강 참사, 북한의 핵실험이 한국과 세계에 일으키는 반향과 분노가 실시간으로 북한 내부에 들어갈 때, 그리고 김정일의 행태가 북한참상의 원인이라는 점이 알려질 때, 김정일의 행동은 심각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독재체제의 붕괴란 주민들의 체제 회의(懷疑), 내부적 저항 그리고 외부로의 저항으로 이어지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동독의 붕괴는 서독 TV가 동독의 전 지역에서 시청가능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한국은 지상파, 케이블, 위성TV, 지상파DMB, 위성DMB 및 최근의 인터넷 TV 등 수많은 영상매체가 넘치고 있다. 예를 들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위성DMB는 수신 장치만 있다면 한반도 전역에서 시청이 가능하지만 한국 내에서 위성DMB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상태다. 또 휴전선 근처의 고지에서 지상파 TV를 북한의 PAL 방식으로 한국의 TV방송을 송출한다면 그 효과는 확성기를 통한 대북방송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북한지역에는 위성DMB 방송과 스카이라이프가 송출되고 있다. 다만 수신 장치가 없기 때문에 북한 주민이 세계의 정보에서 차단되고 있을 뿐이다. 만일 값싸고 북한 내부 사정에 적합하게 제작된 수신 장치를 대량으로 북한에 보낼 수 있다면, 한국은 북한주민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점은 북한의 급변사태는 물론 통일에 필요한 남북의 의식 차이를 제거하는 데에 일조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유연하면서도 단호하고, 먼 미래를 생각하는 일관된 대북정책’을 실행하고 싶다면 우선 김정일의 광태(狂態)를 잡을 수 있는 제어장치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 그것은 북한에 합법적으로 대량의 정보를 흘려보내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