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백두산 시인’ 유동호

북한 문학계에서 ‘백두산 시인’으로 불리는 노동자 출신 중견시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주인공은 류동호(50)씨.

중학교(남한의 중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끊임없이 샘솟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실현, 북한 유명 시인 반열에 올랐다.

‘백두산 시인’이란 명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붙여준 것이다.

그가 2000년 새해 백두산에 올라 목청껏 소리 높여 시를 읊었다. 그 직후 김 국방위원장이 그를 초대, “백두산정에서 시를 읊는 동무를 보았다”, “참 멋있었다”며 “동무는 백두산 시인”이라고 칭찬한 것이 계기가 돼 이같이 불리고 있다.

1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계열 잡지인 ‘조국’ 6월호에 따르면 류씨는 문학인을 양성하는 대표적 교육기관인 김형직사범대학 어문학부 작가양성반을 거쳐 시인으로 활동한 15년 간 무려 750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창작했다.

이 중에는 ‘추억의 두만강’, ‘먼저 찾아요’, ‘멋있는 사람’, ‘심장의 노래’ 등 “인민들이 열렬히 사랑하는 명작”도 있다.

공장 노동자 출신인 그가 유명 시인으로 된 데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1955년 4월 11남매 중 4째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인 자강도 전천군의 한 기계공장 선반공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노동을 하며 느낀 감흥을 담은 가사 ‘시대의 부름 따라 청년들 앞으로’가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발표되면서 아마추어 작가라고 할 수 있는 문학통신원이 됐다.

그는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도 소년시절 품었던 문학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이와 관련, ‘조국’은 “(선반공으로 일하던 시기) 그의 집 창가에는 밤새도록 불빛이 꺼질 줄 몰랐다”고 소개했다.

10여 년 간 문학통신원으로 활동하며 시인의 기초를 닦은 그는 작가양성반을 거쳐 시인으로 데뷔했다.

초기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그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직후 김 국방위원장을 ‘태양’으로 묘사한 시 ‘우리의 김정일 동지’가 주목받기 시작한 후 급성장했다.

동료인 박정애씨는 류 시인을 ‘정열가이며 투지가’라며 “자기가 일단 잡은 종자(말하고 싶은 핵심)는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끝까지 완성품으로 만드는 끈질긴 성미와 굽힐 줄 모르는 기질이 있다”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