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3.1운동 어떻게 보나

북한은 요코다 메구미 유골 등의 문제로 일본과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3ㆍ1절을 맞는다.

북한은 특정외국선박 입출항금지법 입법 추진, 외환법 개정안 의회 통과 등 일본의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했던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3ㆍ1인민)봉기자들의피 값을 받아내고야 말 것”이라는 격앙된 분위기에서 3ㆍ1절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3ㆍ1만세운동을 ‘3ㆍ1인민봉기’로 부른다. 북한은 “(3ㆍ1인민)봉기 기간에 일제의 총칼에 쓰러진 조선인민이 10여만 명이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남한도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발언으로 일본을 성토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3ㆍ1절을 맞고 있다.

일본에 대한 불편한 심기 속에서 맞는 3ㆍ1절을 보는 북한의 시각은 어떨가.

결론적으로 말해 남북이 모두 큰 의미를 두고 있지만 북한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북한은 3ㆍ1운동이 “민족의 기개를 과시한 거족적인 애국투쟁”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남한과 같이 공휴일로까지 지정하지는 않는다.

북한은 이날 국가적 기념식을 거행하지 않고 신문ㆍ방송 등 매체의 기념기사 게재, 주민들의 관련 유적지ㆍ계급교양관의 견학 등으로 치르는 경향이다.

북한은 3ㆍ1운동이 서울이 아닌 평양 장대재에 위치한 숭실학교에서 학생들이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됐으며,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과 연관시키고 있다.

북한은 “이날 평양에서는 낮 12시에 울린 종소리를 신호로 김형직이 육성한 애국적인 청년학생과 인민을 선두로 10여만 명의 군중이 ‘조선독립 만세’, ‘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시각은 3ㆍ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에 대해서도 비판적인것으로 이어진다.

3ㆍ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보여준 행동은 “철두철미 반민족적이며 반인민적인 배신행동이었으며 일제 강점자들에 대한 비굴한 투항행위였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무저항 만세운동을 주도, 3ㆍ1운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북한은 3ㆍ1운동을 독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실패’로 보고 그 원인을일제의 ‘악랄한 압살책동’과 무저항 , 탁월한 수령과 당의 영도를 받지못한 것 등으로 지적하며 “인민대중이 혁명투쟁에서 승리하려면 탁월한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 하며 과학적인 전략과 전술에 기초해 조직적인 투쟁을 벌여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주장하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