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일제 전시경제체제 그대로 계승했다”

2006년의 시작과 동시에 386세대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인문서의 출간으로 한국역사학계가 들끓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조명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 2006. 이하 ‘재인식’)이 그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이 책의 출간은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정치권에도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1400여 쪽에 달하는 2권 분량의 학술서가 몇 만권이나 팔려나간 것에서 그 파급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책은 성역처럼 평가되던 식민지 시기와 해방 후 분단 역사에 대한 토론에 불을 붙였다. 온갖 뭇매 속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실증적 자료를 통해 논쟁을 이끌기도 했고, 조선후기 주민들의 삶과 식민지시기 경제발전상을 비교하고, 전후시기 이승만 재평가문제까지 거론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2004. 이하 ‘인식’)이 필독서로 여겨지던 시기에 대학을 다녔던 386 세대들에게 ‘재인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실증적 자료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허상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논리적 무게감에 그야말로 압도당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이야기'(기파랑)는 재인식’의 공동 집필자인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EBS 라디오방송 특강 내용을 바탕으로 ‘재인식’의 내용을 대중적으로 풀어 쓴 것이다. ‘재인식’의 해설서라고 볼 수 있는데,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해방전후사를 좀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출간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조선 말기부터 대한민국 건국까지 근 50년의 역사를 이야기 형태로 풀어냈다.

책은 우리사회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며 ‘민족’을 단위로 하기 보다는 ‘개인’을 단위로 역사를 서술할 것을 주문했다.

‘인식’에 기반한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역사는 일제 식민지기를 거쳐 해방전후부터 뒤틀리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평가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고는 우리가 선진국으로 나갈 수 없다’라며 과거사 청산을 임기 중 주요 목표로 내세웠다.

‘해방전후사’ 성역을 깨자

특히 ‘분단’ 그 자체는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벗을 수 없는 굴레를 씌웠다. 분단됐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고, 반공을 기치로 한 군사독재가 가능했고, 남한 내 이념갈등이 계속되며, 군사 대치상황 때문에 경제발전이 발목 잡혀 있고, 외국군이 주둔해 있다는 식의 피해의식이 사회 전반에 팽배했다. 백낙청 교수는 한반도의 이런 체제를 ‘분단체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의 불행에 대한 불만은 분단과 전쟁 책임론으로 이어져 누가 먼저 ‘갈라서자고 했느냐’로 쟁점이 쏠렸다. 소련이 해체되고 쏟아져 나온 비밀문서들은 북쪽에서는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미 1945년부터 진행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소련군과 그 협력자들은 1946년부터 북한을 완벽하게 장악,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등 사실상 정부에 준하는 통치행위를 전개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키무라 미츠히코의 논문을 빌어 분단 당시 북한의 경제체제가 일제의 전시경제체제를 그대로 계승한 것임을 소개했다. 일제는 전쟁수행을 위해 시장경제를 정지시키고 공출과 배급으로 상징되는 전시경제체제를 구축한다. 해방 후 남한에서는 통제경제가 곧바로 폐지되고 시장경제가 부활됐지만, 북한에서는 이름만 바뀐 통제 경제 시스템이 더 강화됐다.

공출(供出)이라는 강제 수매제는 성출(誠出)로 이름이 바뀌어 정부는 값도 치르지 않고 쌀을 거둬갔으며, 이 같은 공출제는 쌀 이외의 다른 작물에도 확대되었다. 저자는 북한민중에게 공출이나 성출이나 그게 그거였으니 “북한 민중에게 과연 해방이란 것이 있기나 했는가”라는 키무라 교수의 말이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고 감탄한다.

이어 신형기 교수의 논문을 인용해 ‘북한의 체제는 천황제를 계승한 수령제’라고 규정했다. 북한은 사회주의적 동원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신(新)인간’이라는 이상적 인간상을 제시하고, 그 모델로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김일성을 상정하여 수령제 국가를 만들었다.

반대로 지주, 친일파, 이기주의, 개인주의는 ‘구(舊)인간’의 상징으로서 철저히 배제됐다. 저자는 신·구 계급구분에 따른 숙청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전쟁 전 이미 100만 명의 ‘구(舊)인간’이 남쪽으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져와 분단을 고착시켰던 6.25전쟁에 대한 ‘인식’의 관점도 지적했다. ‘인식’의 이데올로기적 토대가 됐던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설’은 이미 학계에서 설 곳을 잃었지만, 그 역사관은 고스란히 교과서에 남아 젊은 세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분단과 전쟁에 대한 논쟁은 ‘재인식’의 출간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해설판 ‘대한민국 이야기’을 통해 ‘역사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찬찬히 돌아보아야할 성찰의 대상’이라는 상식적 인식이 젊은 세대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래본다.

최옥화 / 대학생 웹진 바이트(www.i-bait.com)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