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위폐를 만들지 않았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둘러싼 미국 정부의 주장과 달리 북한은 달러화 위폐를 제조할 능력도, 제조한 사실도 없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4일 미국 매클래처-트리뷴지에 실린 북한의 슈퍼노트 제조 의혹에 대한 추적 기사를 전재하면서 진본 달러화와 거의 똑같을 정도의 위폐를 북한은 제조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위폐 제조 혐의를 뒷받침할만한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이 제시한 혐의는 상당 부분은 탈북자들로 구성된 ‘한국의 전문가’로부터 나온 것이다.

당시 미 언론은 이들 탈북자의 주장에 근거해 미 의원들이나 연구원, 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북한이 위폐를 제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6년 뉴욕타임즈는 탈북자의 설명에 의거, 북한이 정교한 슈퍼노트를 만들었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미 언론이 핵심 소식통으로 인용했던 ‘김동식’이라는 이름의 화학자는 이미 소재를 감춘 상태이며 그의 동료였던 문모씨는 김씨가 100달러에 인쇄된 ‘벤저민 프랭클린’ 조차 모른채 돈을 바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터폴이 지난 2005년 3월 회원국들에게 인쇄 장비, 종이 및 잉크의 북한판매를 금지토록 요청한 이후 미국 정부는 이듬해 7월 프랑스에서 인터폴로 하여금 각 중앙은행 당국자와 경찰 조직, 조폐 전문가들을 소집한 회의를 개최케 했다.

60여명의 전문가가 모인 이 회의에서 미국 정보당국은 어떤 구체적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채 ‘정보’만을 언급했다. 미국 정부는 이들 전문가가 미국측 주장을 사실이라고 수긍했다고 전했다.

당시 이 회의에 참석했던 익명의 전문가는 “내가 웃음을 터뜨렸는지, 잠을 잤는지 기억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더더욱 결정적인 대목은 지난해 5월 과거 미 재무당국과 긴밀하게 협조했던 스위스 연방경찰로부터 나왔다. 스위스 경찰당국은 미국측에 좀 더 많은 증거를 제시할 것을 요청하며 북한이 슈퍼노트의 배후인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스위스측의 의심은 지난 1989년 필리핀에서 처음 슈퍼노트가 발견된 이후 전 세계에서 유통 적발된 위폐의 양이 매우 적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 위폐 제조장비를 구매하기에도 모자란 5천만달러 어치의 위폐가 그 사이 발견됐을 뿐이다.

스위스 경찰측은 “1970년대 슈퍼노트에 사용된 인쇄기술을 감안하면 북한이 오늘날 자국 지폐를 그렇게 저급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는 이 나라가 그렇게 정교한 슈퍼노트를 생산할 위치에 있는지 의심을 갖게 한다”고 밝혔다.

이들 가짜 100달러 지폐는 0.0127㎜ 두께에 벤저민 프랭클린의 코트를 에워싼 글자나 숫자 100에 감춰진 선을 그대로 모방했을 정도로 미세한 인쇄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들 슈퍼노트는 특히 광학적으로 변할 수 있는 잉크를 진본처럼 사용하고 있는데 지폐 오른쪽의 숫자 100에 사용된 잉크는 우주선 창문에 사용될 정도의 특수성을 갖고 있다.

스위스 경찰측은 특히 위폐 제조자는 누구나 미 달러화의 조판본의 미세한 변화를 감안, 최소한 19종의 버전을 갖고 있다며 북한이 슈퍼노트의 진정한 제조처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미 조폐국의 전 국장인 토머스 퍼거슨 같은 전문가도 “이런 슈퍼노트는 너무 정교해서 정부의 인쇄장비에 접근할 수 있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란 정부나 러시아 및 중국의 범죄집단을 제시하고 있다.

제임스 콜비 전 미국 공화당 의원은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화폐를 만들어내는 집단”이라며 “이것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없다. 북한이 이런 정교한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가장 설득력이 있는 증거는 2004년 아일랜드공화군(IRA) 지파의 지도자인 션 갈랜드 기소 사건이다.

1990년대말 100만달러 규모의 슈퍼노트를 러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입수, 유럽에 들여온 혐의를 받고 있는 갈랜드는 현재 아일랜드에 있으나 미국은 그의 신병 인도를 추진치 않고 있다.

강경론자인 존 볼튼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평양이 슈퍼노트를 제조했다는 증거를 본 적이 없다”면서도 “북한이 위조 달러를 유통시켰다는 증거는 북한이 나쁜 일을 저질렀다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미국이 또 다른 증거의 단편으로 내세우고 있는 마카오 BDA의 역할도 다소 의아스러워 보인다. 미 재무부는 BDA를 돈세탁 거래 은행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제재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마카오 정부를 대리한 회계법인 에른스트 & 영은 BDA에서 지난 1994년 단 한건의 위폐 사건만이 적발됐다며 당시 위조 달러는 북한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BDA는 위폐 발견 사실을 당국에 자진해 통보하기도 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계속 슈퍼노트가 발견되고 있지만 부시 정부는 더 이상 북한을 위폐 제조국이라고 비난하지 않고 있으며 6자회담에서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치 않고 있다.

북한이 슈퍼노트 제조국이 아닐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머니메이커’의 저자 클라우스 벤더는 “정교한 100달러 위폐는 더 이상 가짜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진폐의 불법적인 인쇄로 보는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슈퍼노트는 일반 위폐 제조자가 할 수 있는 것을 뛰어넘었다”며 “이들 슈퍼노트는 너무 정교하고 자주 업데이트돼서 오직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정부기관만이 제조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벤더의 주장은 전혀 터무니없지만은 않다.

CIA 역사를 다룬 저널리스트 팀 와이너의 새로운 책에선 CIA가 위폐 제조를 통해 소련 경제를 잠식하려 했는지가 언급돼 있다.

정교한 위폐의 한정적 제조는 정보기관이나 법 집행기관이 비우호적 정권이나 테러그룹, 범죄집단의 자금이동을 추적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신문은 주장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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