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체제”

(문화일보 2005-11-22)

라울 리베로(60)는 쿠바의 대표적 반체제 시인이자 언론인이다. 쿠바의 카스트로 체제를 우회적으로 풍자하며 사회변화를 추구해왔던 그는 2003년 4월 국가반역 및 미국찬양 죄로 20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후 그는프랑스배우 카트린 드뇌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 명사들의 탄원 덕분에 1년8개월 만에 극적으로 수형생활을 끝낸 뒤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뉴욕대 강연차 미국땅을 처음 밟은 그를 지난 6일 뉴욕에서 만나 쿠바에서의 삶과 글쓰기에 대해 들었다.

라울 리베로는 동유럽 체제전환 때 체코의 반체제극작가로 활동 했던 바츨라프 하벨을 연상케하지만, 인상은 황지우 시인을 닮았다. ‘뚱뚱한 가죽부대’ 속에 담긴 그의 늘어진 몸집 때문이 아니라 안경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매와 억압사회에서 단련된 문체가 비슷하다. 다만 긴장된 체제 속의 삶이 남긴 잔영 때문인지 표정이 무겁고 어두웠다는게 차이라면 차이다.

리베로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지난 5일 저녁 뉴욕대 강연후 철석같이 인터뷰 약속을 했는데, 다음날 아침 약속장소에서 1시 간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마지막 방편으로 수소문 끝에 그의 숙소 주소를 확인한 뒤 가서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한 10분이 지났을까. 그의 부인 블랑카가 부스스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리베로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어렵게 잠자는 사람을 깨워 시작됐지만 그가 쏟아내는 한마디 한마디는 달콤하고 향이 강한 쿠바식 에스프레소만큼이나 강렬했다.

―어떤 글로 20년형을 받았는가.

“나는 훈련된 언론인이다. 쿠바에 대한 글은 늘 상황을 묘사하는 식으로 써왔다. 내 글 어디에서도 피델카스트로를 직접 거론 하거나, 암시하거나 비판한 적이 없다. 그러나 비밀경찰은 내게 국가반역죄, 미국찬양죄를 씌워 20년형을 선고했다.”

―20년 선고를 받았을 때 느낌이 어땠는가.

“내 나이 57세 때였는데 이젠 감옥에서 죽겠구나 생각했다. 20년 세월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는 옥중생활을 얘기하다 갑자기 몸을 일으켜 걸음을 떼며, “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독방 크기는 이렇게 여섯 발자국 정도였다 ”면서 손을 양편으로 쭉 폈다. 창문도 없는 컴컴한 시멘트방, 대각선으로 양손을 쭉 벋으면 벽에 닿을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1년8개월만에 석방됐는가.

“나를 잘 아는 마르케스와 드뇌브, 독일작가 귄터그라스가 모두 카스트로에게 항의편지를 보내고 청원을 했다. 카스트로는 이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나를 풀어준 것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멕시코의 전직 대통령들, 코스타리카의 정치인들도 나서서 카스트로를 압박했다. 그러나 카스트로는 “라울 처럼 위험한 사람은 평생 감옥에 가둬야 한다”며 거부했는데 유럽쪽에서 쿠바지원을 거부할 움직임을 보이자 곧바로 손을 들었다.

―2004년 11월 석방된 후 올 4월 스페인으로 망명했는데, 그곳 생활은 어떤가.

“내가 원하는 모든 말을 아무런 제약없이 할 수 있다는게 때때로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쿠바에서 글을 쓰던 시절이 정말 그립다. 하루빨리 쿠바로 가고 싶다. 쿠바는 카스트로의 것이 아니라 쿠바 사람들 모두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90년대부터 독립 저널리스트 그룹을 만들어 활동했다고 하는데 쿠바에서 그런 활동이 허용되는가.

“쿠바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썼다.

정치비판 외에 모든 기사를 쓸 수 있다. 예컨대 어느 마을의 알코올중독자 얘기는 써도 되는데, 그렇다고 쿠바에 알코올중독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쓰면 안된다. 체제비판이 되기 때문이다. 글을 쓴 뒤 전화를 통해 글을 부른다. e메일도, 팩스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간 타자기로 글을 썼는데 2003년 수감될 때 그것마저 압수당해 고통스러웠다.”

―19세기적으로 글을 쓰고 보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쿠바에서는 일반인의 인터넷 접근이 금지된 상태이며, 팩스도 자유로이 쓰기 어렵다. 나도 두번이나 팩시밀리를 빼앗긴 뒤 국제전화로 기사를 부르는 식으로 외국언론에 기고했다.

국제전화는 늘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쿠바 관영미디어의 모스크바특파원까지 지낸 사람이 체제에 비판적인 독립언론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70년대 말부터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해오다가 동유럽 붕괴 후 부터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그래서 동료 언론인들 5명과 함께 독립저널리스트 회사인 쿠바 프레스를 1995년 만들게 된 것이다.”

―쿠바프레스의 활동을 소개하면.

“외국언론사가 의뢰하는 글도 취재해서 보내주고, 우리가 글을 써서 외국신문에 기고하기도 한다. 나는 시카코 트리뷴 등에 기고해왔다. 이와 함께 저널리즘 원론, 취재기법에 대해 강의하며 새로운 저널리스트들을 키우는 일도 했다.”

―독립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글 때문에 늘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어떤 때는 2일, 어떤 때는 3일, 그러다 20년형을 받은 것이다. 늘 정부의 감시를 생각해야 하고 충돌을 피하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한다. 또 물자가 아주 귀해서 취재할 때 사람들에게 볼펜을 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

그는 인터뷰 내내 줄담배를 피웠다. 그의 치아와 손가락은 담배 때문인지 누렇게 변했다. “왜 그렇게 담배를 많이 피우냐”고 했더니 “긴장 때문”이라며 또 성냥을 그었다. 긴장이란 말에 가슴이 저렸다. 담배는 체제의 압박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일종의 해방구였던 것이다. 그는 “담배든 알코올이든 무엇에든 중독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사회가 바로 쿠바”라고 말했다.

―14세 때 혁명을 겪고 평생 카스트로체제에서 살았는데, 그간의 일상생활을 얘기한다면.

“쿠바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공포를 주입시키고, 굶주림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쿠바의 가장 큰 비극이다. 쿠바에서 사회주의란 말은 불행과 가난의 동의어로 쓰인다. 쿠바의 일상은 코미디같다. 웃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로 유머가 넘치는 사회다. 그런데 웃고 나면 눈물이 나는 서글픈 유머다. 쿠바는 거대한 연극판같다.”

―거대한 연극판같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쿠바가 아주 위선적 사회라는 말이다. 누구도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고 자기가 맡은 배역만을 충실히할 뿐이다. 카스트로 또한 마찬가지다. 그 또한 자기가 맡은 역을 수행하는 배우인지 모른다. 누구도 거리에서는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집에 들어와 가족과는 얘기하지만 감시가 무서워 밖에서는 하지 않는다.”

―쿠바가 앞으로 어떻게 돼야 한다고 보는가.

“카스트로는 이제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어떤 것도 하기 힘들지만 결국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을 해야 한다. 급진적 변화가 점진적 과정으로 일어나야 한다. 급진적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면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카스트로 이후 쿠바에 대한 전망은.

“카스트로는 이제 78세다. 만약 그가 세상을 떠나면 동생 라울(73)이 지도자가 되겠지만 변화는 막지 못할 것이다. 카스트로 생존여부와 상관없이 2~3년 내에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체게바라에 대한 동경이 전세계적으로 강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쿠바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체게바라가 존경받는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말하지 않는다. 그는 쿠바에 정치범수용소를 만들고 2000~3000명을 거기서 죽게 한 사람이다. 나는 그를 혐오한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한국이 공산주의 때문에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고 있듯이 쿠바도 카스트로체제 때문에 수많은 가족이 흩어져 살고 있다. 나는 가족과 스페인으로 망명했지만 전 부인과 낳은 딸은 여전히 아바나에 남아 있다. 한국과 쿠바에는 한을 품은 이산가족이 많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쿠바와 북한이 자주 비교되는데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가.

“작가동맹에서 일할 때, 1979년 북한을 방문했는데 체제는 쿠바에 비해 훨씬 강하지만 보통사람들의 삶은 훨씬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한은 쿠바보다 억압적이며, 가난하고 더 어두운 나라였다. 쿠바는 북한에 비해 훨씬 느슨하고 자유롭다. 쿠바에서는 해외망명자라 해도 자유롭게 쿠바내 가족들에게 전화하고 돈도 보내고 방문도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이 모든 게 금지되고 있지 않는가. 북한은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체제다.”

―마드리드 생활을 소개한다면.

“나는 글을 쓰고 시를 쓸 때 제일 행복하다. 마드리드에서도 글을 쓰고 산다.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쓴다.

최근 ‘말과 빵’‘호의’(Favor)라는 제목의 사회비평서를 출간 했고, 요즘엔 ‘옥중체험’을 집필중이다. 정치범이 감옥에서 겪 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해 기록할 생각이다.” 뉴욕=이미숙특파원 musel@munhwa.com

▶▶약력▲시인, 언론인, 스페인 일간지 ‘엘 문도’의 칼럼니스트.‘공중의 시’ 등 시집 15권,’인간의 역할’ 등 저서 6권 발간.▲국가반역죄로 2003년4월 투옥, 20년형 선고.2004년11월 석방 후 2005년4월 스페인으로 망명.▲쿠바 프레스 대표 (1995~2003년)▲작가동맹 대외관계 국장(1980년대)▲쿠바 관영매체 모스크바 특파원(1973~1976년)▲시집 ‘대지의 시’로 내셔널 문학상 수상 (1970년)▲아바나대 언론학과 졸업▲1945년 아바나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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