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10월 이후 약 3년 4개월 만에 이루어지는 이산가족 상봉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남측 이산가족들은 19일 오후 강원도 속초 한화콘도에 집결했다. 이들은 상봉자 확인을 마치고 방북 교육을 받은 후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내일(20일) 오전 9시 금강산으로 향한다. 남측 이산가족 상봉 최종 대상자는 당초 83명에서 한 명이 건강 악화로 상봉을 포기해 최종 82명으로 가족 58명이 동행할 예정이다.
남측 이산가족들은 60년만에 북측 가족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밤잠을 설치며 아침 일찍부터 속초로 집결했다. 당초 등록 시작 시간은 이날 오후 2시였지만, 2시에 이미 70명, 2시 47분쯤에는 81명 등록, 오후 3시 5분쯤 상봉자 82명과 동반가족 58명 모두 등록을 마쳤다. 이들이 얼마나 조급한 마음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접수가 진행된 한화콘도는 상봉 대상자 총 140명은 물론 자원봉사자 200여 명, 취재진 100여 명이 몰리면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적은 콘도 입구에는 만약을 대비해 의료진 12명을 대기해 놓고, 상봉 대상자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또한 상봉 대상자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 휠체어 40여 대 배치해 상봉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이산상봉 행사의 가장 큰 변수는 상봉자들 대부분이 고령이라는 점과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 내린 폭설이다. 상봉자들의 건강 검진을 진행한 한 의사는 “건강이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대상자들(고령)의 혈압이 전체적으로 높아서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금강산이 날씨가 추운데 이럴 경우 뇌졸중, 뇌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행사 후 주무시기 전에 방으로 의료진들이 직접 방문해 재검진을 할 것이다. 현재 의료문제로 포기할 만한 분은 아직 안 계시다”고 말했다.
상봉자들은 60년 만에 북측 가족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기대에 찬 표정이다. 한 상봉 가족은 피곤해보이는 자원 봉사자에게 “나보다 당신이 건강검진을 받아야 할 것 같다”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남측 이산상봉 대상자 중 96세로 최고령자 중 한 명인 김성윤 할머니는 건강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할머니의 아들은 “건강에 문제 없으시다. 지금 96세인데 자기 핸드폰(플립)을 그대로 쓰시고 계신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북측에 있는 여동생과 사촌, 조카를 만날 예정이다.
상봉 대상자 중 이동식 침대에 누워서 들어온 가족도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당사자는 올해 91세인 김섬경 할아버지. 1차 이산가족 상봉단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김 할아버지는 수액을 매달고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 집결지인 속초 한화콘도에 들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난 18일 하루 일찍 속초에 도착한 김 할아버지는 감기증세를 보여 쓰러졌다. 현재 김 할아버지는 어떻게서든 금강산에 가서 아들 김진천(66) 씨와 딸 춘순(67) 씨를 만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상봉을 눈앞에 두고 쓰러져 금강산행이 불투명한 상태다.
현재 김 할아버지는 얼굴색이 창백하고 입을 벌리신 채 멍하신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하고 누워서 이동하고 있으며 눈은 뜨고 있지만, 의식이 없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북한에 있는 손자를 만나기 위해 속초 한화콘도에 가장 먼저 도착한 백관수(91) 씨. 인천에 사는 백 씨는 이른 새벽 일어나 오전 8시에 택시를 대절, 도중에 서울에 들러 딸 백운경(47) 씨를 태우고 속초까지 왔다. 딸 백 씨는 “동해안에 눈이 많이 왔다길래 늦을까봐 일찍 출발했는데 1등으로 도착할 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백 씨는 손자에게 선물할 내복, 의약품, 화장품 등 큰 가방 3개와 서른 살인 손자가 좋아할 것 같은 초코파이도 잊지 않았다. 백 씨는 당초 아들과의 상봉을 신청했지만 아들이 숨진 것으로 확인돼 손자를 만나게 됐다. 백 씨는 “나만 남한에서 편하게 산 것 같아 손자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라며 “손자가 원망하는 눈으로 나를 볼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사는 조카 2명을 만나는 박춘재(72) 씨는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돼 불편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했다. 집이 서울 신내동에 있는 박 씨는 아내와 함께 아들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속초까지 왔다.
박 씨는 최근 집에서 쓰러져 20여 일 동안 입원 치료를 받은 뒤 2, 3일 전에 퇴원했다.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온 박 씨는 “못 볼 줄만 알았던 조카들을 보고픈 마음에 몸이 불편해도 여기까지 왔다”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부친의 유언장 가져온 상봉자도 있었다. 누나와 고모, 사촌을 만날 예정인 김명복(66) 씨는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장을 갖고 왔다. 이번에 금강산에서 만나는 누나 김명자(68) 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김 씨는 “아버지는 큰 딸을 북한에 남겨놓고 온 데 대해 평생 한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정말로 미안해했다”면서 “아버지와 어머니 부부 싸움 때는 ‘당신이 먼저 남쪽에 가는 바람에 내가 명자를 두고 온 거 아니냐’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타박하기도 해 아버지는 그(누나)에 대해 더 큰 미안함을 갖고 살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부친은 10년 전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장 2장을 남겼다. 한 장은 “내가 죽더라도 꼭 누나인 명자를 찾으라는 내용”이었고, 또 다른 한 장은 황해도에 남겨둔 부동산이다.
함경남도가 고향인 조기덕(93) 씨는 아들과 동반해 북측에 있는 큰 아들(1950년생)을 만난다. 조 씨는 북에 있는 큰아들과 남쪽에 있는 작은 아들을 만나게 하는 게 평생 소원이었다. 큰 아들 만날 생각에 “말도 못하게 기쁘다”는 조 씨는 오리털 파카, 내의, 치약과 비누 등 생필품이 든 가방 두 개를 준비했다. 당초 조 씨는 북에 있는 아내 김복희 씨를 만날 예정이었으나, 운신이 힘들어 아들과 며느리만 만날 예정이다.
북한에 있는 큰딸을 만나러 간다는 박운형(92) 씨는 아들과 동반했다. 아들 박철 씨는 “우리는 보다시피 기쁘다기보다는 침울한 표정이다. 내일 모레 헤어질 때의 그 아픔, 절실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면서 “아버지가 92살이신데 충격받으실까봐 벌써부터 걱정이다. 우리만 가서 미안하다. 통제된 속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할텐데. 이런 상봉행사보다 서신왕례라도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