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세가지 렌즈’

북한에 쌀을 지원하자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굶주리는 주민들에게 쌀을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쌀 지원 문제의 해법을 위해선 적어도 세 개의 ‘렌즈’를 통해 북한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 렌즈는, 쌀을 주면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과연 전달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증언한다. 심지어 북한 주민들은 한국에서 쌀을 주는 것을 도리어 반기지 않는다는 ‘참담한’ 이야기도 있다. 북한 주민들은 “간부들만 배불리지 일반 백성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탈북자는 지난 시기 한국에서 북한으로 지원한 물자가 올라갈 때면 “장군님(김정일)의 선군정치에 두려움을 느낀 남조선이 쌀과 비료를 보내왔다”고 선전했다고도 한다.


북한 정권이 한국의 지원을 정권 홍보에 이용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쌀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이 되도록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것이 그렇지 않은 것이다. 보다 못한 국제사회가 북한 당국에게 요구한 방법은 쌀이 주민들에게 전달이 되는지 지켜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즉 모니터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 정권이 그것조차 안 된다고 선을 긋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정권은 쌀이 북한 주민들에게 지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속시원하게 보여 주지 않는다. 그들이 이야기 하는 것은 항구에 쌀을 내려놓는 것만 보고 돌아가라는 것이다. 북한의 군용 트럭이 항구의 보이지 않는 곳에 대기하고 있다가 한국의 배가 돌아가면 나타나 쌀을 싣고 가곤 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도 있다. 심지어는 주민들에게 나눠준 쌀을 얼마 후 도로 걷어 갔다는 증언도 있다.


한국이 아닌 세계식량계획(WFP)과 같은 국제사회의 지원이나 국제구호기구의 활동과 관련해서도 투명성 문제가 항상 도마에 올랐다. 북한 당국이 투명성 제고를 요구하는 국제지원기구를 일방적으로 추방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국제구호기구는 그야말로 북한 주민들을 위해 당국을 설득하고 심지어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라도 지원을 지속하려 노력해 왔다.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받으라고 설득을 해야 하는 참으로 희한한 상황인 것이다.


두 번째 렌즈는 보다 근본적인 데 있다. 북한의 주민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의 연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국내의 한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초 집단농장을 해체하여 ‘가족농’으로 바꾼 중국은 농업생산량이 연평균 7% 증가하였다고 한다. 통상 북한에서 필요로 하는 곡물 수요량은 600만톤 정도인데 최대 200만톤 정도가 항상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북한이 중국처럼 정책을 바꾼다면 6년만 지나면 이 같은 부족분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그동안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북한이 가장 심각한 식량난에 처했던 1990년대 중반, 중국이 북한에 쌀을 주기를 주저한 이유가 북한이 중국처럼 변화하도록 자극하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쌀을 주면서 그것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핵문제에서 보듯이 북한 정권이 협박과 갈취 전략으로 생존을 추구해 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그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 정부가 번번이 입증시켜 주었으니 북한이 습관을 고칠 리 만무하다는 푸념이 거기서 나온다.


세 번째 렌즈, 그것은 북한 정권의 이중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이다. 주민들이 굶주리는 동안 북한 정권은 핵실험이다 미사일 발사다 하며 천문학적인 비용을 탕진하고 있다. 그렇게 드는 비용이면 북한 주민들의 만성적 굶주림을 몇 년 치는 해결하고 남는다는데 그럼에도 그것을 외면하는 정권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1990년대 중반 이후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짧은 시간이 아니다. 북한 정권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쌀을 주는 한국을 상대로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하였다. 북한의 행태는 북한 당국이 진정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게 하고도 남는다.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북한 문제의 연원은 북한 정권에게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변하지 않으면 죄다 무용지물인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줄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쌀을 짊어지고 달려가고픈 심정에도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주민들에게 가지 않는 쌀을 주어 주민들의 생존 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정권의 체제 유지에만 도움을 준다면 그것은 애당초 지원을 주장한 사람들의 취지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신중하게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북한 정권이 ‘지원의 투명성’에 적극적으로 나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야 한다. 북한 정권이 왜 주민들은 굶주리게 하면서 천문학적 비용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에 몰두하였는지 비판하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북한 정권이 최소한 농업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도적 지원이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에게는 정작 도움이 되는 않는 아니, 북한 주민들의 고통만 더욱 연장시키는 정반대의 결과에 이르게 될 수 있음을 고민해야 한다.


지원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적 논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북한 정권의 변화를 동반하는 지원이 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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