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선 ‘반역자→애국자’ 탈바꿈 쉽다?

북한 당국은 체제선전을 할 때 ‘남조선(남한)은 지옥, 공화국(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묘사하며 주민들을 교육한다. 때문에 북한 출신인 남한의 경제·정치인 등에겐 ‘매국 역적’이라고 딱지를 붙여 교양해 왔다.


다만 이들 중 다시 북한에 돌아오거나 사회발전 등에 기여한 인물 등에 있어선 ‘애국자’라며 극찬한다. 최근 북한 김정일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구두친서를 통해 “애국과 통일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한 애국적 기업인”이라고 극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주영, 최홍희, 최덕신

강원도 통천 태생인 정주영도 이른바 ‘소떼 방북'(1998년) 이전에는 주민들에겐 생소한 인물이었다. 당시 북한 내에는 “북한에서 소 한 마리 훔쳐서 남한으로 월남했다가 부자가 됐는데 훔쳐간 죄의식 때문에 소떼를 몰고 왔다”는 얘기가 돌았다.


정주영은 소떼 방북 당시 김정일을 직접 만나 금강산 관광 사업을 담판 짓고, 이후 김정일의 개인금고에 ‘5억 달러’를 예치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같은 배경에 따라 그는 ‘탈북자→애국자’로 재평가 된다.


반공(反共)투사로 낙인찍혔던 최덕신(1914~1987), 최홍희(1918~2002)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한때 “조국과 인민을 배반한 역적”이라며 주민들에게 ‘반공분자’ ‘반역자’의 대표적 인물로 교육됐다가 이후 ‘애국자’로 선전되고 있다.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최덕신은 6·25전쟁 때 한국군 사단장으로 참전했다. 이후 외무부장관 등을 지내다가 1986년 북한으로 망명했다. 망명 후 조선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북한의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의 1부부터 3부까지가 최덕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영화는 ‘반공투사도 조국이 귀중함을 알고 조국에 오면 언제든지 받아들이지만 조국을 떠난 인생은 비참한 운명을 살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ITF)를 창설한 최홍희는 함경북도 길주 태생이다. 그는 한국에서 제2훈련소장, 6군단장을 거쳐, 말레이시아 대사와 대한태권도협회장을 지내다 ‘동백림사건’ 등에 연루돼 72년 캐나다로 망명했다. 이후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측근들에게 “평생 떠돌아다닌 인생을 고향에 묻히게 하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며 2002년 6월 14일 북한에 들어갔고, 다음날 사망했다. 이후 북한은 최홍희에 대해 “조국을 버리고 남조선과 해외로 다녀봐야 조국이 제일이고 장군님(김정일)의 품을 떠난 생은 낙엽 같은 인생이었다”고 선전했다.


‘민족과 운명’의 6~10부의 모델이 되는 최홍희는 영화 초반 조국과 민족을 버린 반역자로 등장한다. 그러다 해외 생활을 체험하면서 ‘조국과 수령님(김일성)의 품만이 진정 자기운명을 맡길 수 있는 품’이라는 것을 알고 북으로 오게 됐다고 그리고 있다.


특히 북한은 이들을 ‘지나간 과오가 어떻든 간에 현재가 더 중요하며 우리당은 자신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개심할 결심만 있다면 언제든지 받아들인다’는 ‘김정일 광폭(廣幅)정치’의 실천자들로 선전한다.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데 활용되는 셈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