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여성은 꽃’이라는 진짜 이유

▲ 평양시내의 북한 여성 <사진:연합>

1. 여성은 꽃이라네 생활의 꽃이라네 / 한 가정 알뜰살뜰 돌보는 꽃이라네
정다운 안해여 누나여 그대들 없다면 / 생활의 한자리가 비여 있으리
(후렴)여성은 꽃이라네 생활의 꽃이라네

2. 여성은 꽃이라네 행복의 꽃이라네 / 걸어온 위훈의 길에 수놓을 꽃이라네
정다운 안해여 누나여 그대들 없다면 / 행복의 한자리가 비여 있으리

3. 여성은 꽃이라네 나라의 꽃이라네 / 아들딸 영웅으로 키우는 꽃이라네
정다운 안해여 누나여 그대들 없다면 / 나라의 한자리가 비여 있으리

‘여성은 꽃이라네’는 남한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북한의 대중가요다. 그런데 나는 북한에 있을 때는 이 노래가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것이 아주 못마땅했지만, 정작 한국에 와서야 이 노래에 담겨 있는 시대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언젠가 이 노래가 북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맹비난 하는 한국의 여성인권운동가를 만난 적이 있다. 북한여성문제를 다루는 세미나 자리였는데, 나는 여기에서 “이 노래를 무조건 한국적인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런 가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북한의 현실도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아내 잃고 어린 두 남매를 키워야 했던 홀애비 김송남이 작사

이 가사는 북한 조선작가동맹 함경남도지부 시인 김송남이 개인생활체험에 기초하여 1991년에 창작한 것이다. 그는 몇 년째 병고에 시달리던 아내를 잃고 열 살 안팎의 어린 자식 둘을 키워야 하는 홀아비의 설움과 고단함을 수년간 몸소 겪었다.

당시 그가 살던 함흥 쪽에서는 만성적인 식량난이 진행 중이었다. 따라서 각 가정에서 식구들의 끼니를 책임지고 있던 여성의 역할이 한 가족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아내가 없는 것만도 버거운 일인데, 특히 남존여비(男尊女卑) 의식이 유별난 함흥지구에서 쇼핑과 육아, 가사운영 같은 일을 남자이며 시인인 그가 혼자 해내자니 죽은 아내 생각이 간절하였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란 존재 자체가 그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북한의 보통 아내와 누나(어쩌면 시인의 작고한 아내는 시인보다 연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누나란 어조의 친근함에 시인이 매료되었던 것일까?)들에 대한 칭송으로 승화시켰다.

가사를 본 김정일이 직접 작곡가를 지정하고 방송에 내보내

김송남은 가사를 만들어 작가동맹에 제출하였는데 동맹에서는 가사가 특색 있다며 매주 수요일 김정일에게 보고하는 보고서에 가사를 끼워넣었다.

김정일은 이 가사가 맘에 들었는지 <보천보전자악단>에 곡을 붙이게 하였다. <보천보전자악단> 소속이며 북한에서 명성 있는 작곡가로 알려진 이종호가 곡을 지었다. 완성된 곡을 들어보고 김정일은 이 노래를 만수대TV에 내보내라고 직접 지시하였다.

김정일이 보고받은 가사 중 제일 좋은 것은 <보천보전자악단>, 그 다음 것은 <왕재산음악단>, 그 다음 것은 <만수대예술단>에서 작곡하도록 손수 지시한다. 완성된 곡을 검열하고는 매체까지 지적해준다. 곡까지 잘 된 노래는 만수대TV에, 다음 것은 조선중앙TV에, 시원치 않은 가사는 유선방송에 내보내게 한다.

‘예상 외의 대박’ 가정주부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애청곡

“여성은 꽃이라네”는 외국프로그램 매체인 만수대TV(외국인 및 평양시민들의 주말시청용임)에 방영되자마자 전국의 매체가 이 노래를 되받아 방송하면서 군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특히 가정주부들이 그렇게 좋아하였다.

당시 김형직사범대학 작가반 졸업학년이었던 나는 남자동창들까지 눈물을 흘리며 들었다는 이 노래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내가 가사창작 전문이 아니어서 뭐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뭔가 꺼림직한 기분이 느껴지곤 하였다.

내가 꺼림직했던 이유를 3년 후에 가사전문가를 만나면서야 알게 되었다. 금성청년출판사 문학창작단이 해산되면서 나는 그곳 소설가, 시인들과 함께 작가동맹으로 이전되어 갔는데 내가 속한 시문학분과에는 가사창작실이 따로 있었다. 그곳에서 가사창작만 전문으로 해온 국보급 가사작가님과 친교를 쌓을 수 있었다.

이분은 70~80년대에 주옥같은 명가사들을 줄줄이 창작하여 ‘북한에서 최고’라는 명성을 누린 천재가사작가였다. 그가 쓰는 가사마다 깊은 정서가 담겨있고, 한편의 그림이 보이는 것 같아 부르고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흔들어놓았다. 또한 본인이 창작한 수백 편의 가사들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 자리에서 줄줄 외울 정도로 당신이 낳은 가사를 사랑하고 가슴에 늘 품고 다녔다.

여성을 ‘꽃’으로 비유하는 것은 남성적 사고방식일 뿐

하루는 그 분과의 대화가 당시 화제작인 “여성은 꽃이라네” 중심으로 벌어졌다. 피를 토해내듯 열변을 쏟아내던 그 분이 말을 멈췄다. 그러다 무엇을 결심한 듯 단호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그런 가사 안 써요. 가사가 천박해요! 여성들을 성적으로 보고 있잖아요? 여성들을 아주 비하시켰어요. 그 가사 들으면 소름이 오싹 끼쳐요.”

김정일이 좋다고 날짜와 이름까지 비준해준 가사를 천박하다고 과감히 말하다니…… 나는 그분의 양심선언 덕에 지금까지 마음속에 쌓여서 냄새를 풍겨대던 꺼림직한 것들이 말끔히 씻겨 내려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역시 문학은 그 나라 문화의 반영물이며, 그 나라 생활상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구나’고 생각되었다.

생존을 위해 몸까지 팔아야 했던 北여성들의 운명을 왜곡

당시 북한에는 ‘꽃을 사지 않겠어요?’라면서 꽃을 파는, 아니 몸을 파는 매춘여성들이 한참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외화상점이 평양시내 곳곳에 생기면서 잘사는 남자들의 돈을 노린 매춘여성들이 별안간 나타나 평양시를 쇼크상태에 몰아넣은 것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 말에는 함경도 쪽에서 아사가 시작되자 끼니를 위해 여성들이 매춘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소문에 차차 익숙해져 가면서 소문의 주인공들을 욕하지도 못하고, 동정도 하지도 못하며 ‘꽃 파는 여자’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지어야 할지 몰라 너도나도 난감해하던 시기에 이런 노래가 튀어 나온 것이었다.

물론 10년 뒤인 1998년, 북한 전역에 걸친 본격적인 아사가 시작되자 군중심리는 ‘꽃 파는 여자’에 대한 동정론 쪽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그러나 처음으로 북한 남성이 북한 여성을 칭송한 노래

그런데 한국에 와서 또 문제의 그 노래와 마주쳤다. 남북관련회담이 있을 때마다 북측에서는 “북한 사회에서 여성은 꽃이다”는 말을 내뱉어서 회담분위기를 말아 먹는다는 것이었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여성인권운동가는 “내가 만났던 북한 여성대표에게 여성을 꽃에 비유하는 것이 우리 여성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말이라고 설명해주니 오히려 화를 냈다”고 말하며 북한 사람들과 도대체 대화를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탈북자 신분을 밝히지 않고 세미나를 청강하고 있던 나는 발언권을 얻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 가사가 북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가사임에 틀림없다. 그런 가사가 좋답시고 김정일은 친필 사인까지 내려 보냈고, 일반 사람들도 열광할 만큼 북한의 인권의식은 백지상태에 있다. 하지만 당신들이 보지 못하는 사연이 그 가사 속엔 녹아있다. 그 노래에는 북한 남성이 처음으로 북한 여성을 노래했다는 의의가 담겨있는 것이다. 고난의 시대에 홀로 모든 부담을 떠안고 살아가는 북한 여성들의 삶이 담겨 있는 것이다. 당신의 말에 반발했던 북한 여성대표는 북한의 ‘위대성’을 훼손시킬 수 없어 당신의 말을 무시했을 것이다.”

이성과 인간성을 파괴하는 기아와 빈곤

처음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흥분하던 청중들이 나의 말에 차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이성적 논리에 수긍하는 모습은 북한에선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청중들의 눈빛에는 내 의견에 대한 조용한 지지가 담겨 있었다. 숱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두 살배기 아들을 등에 없고 피붙이 하나 없는 남쪽 땅까지 올 수 있었던 나의 힘은 무엇이었나?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그 모든 것들이 나의 힘이었을 것이다.

북한 사회는 이 노래에서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되어 있는 점을 보지 못하고 있고, 남한 사회는 이 노래에 ‘눈물로 얼룩진 북한 여성의 고난’이 담겨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그만큼 인권감각이 무뎌있는 것이고, 남한은 그만큼 물질적 궁핍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닐까?

최진이 前 조선작가동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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