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본 처형장면이 법조인 꿈 갖게했다”

“북한에 살면서 사형당하는 사람들을 보며 `진정으로 인민을 위한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됐는데, 이런 생각이 점차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꿈으로 이어졌습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올해 3월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하는 이삼신(가명·33)씨는 한국에서 법조인의 꿈을 갖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다음 달 한국외국어대 법학과를 졸업하는 이씨는 지난해 법학적성시험(LEET)에 통과하고 나서 전북대 로스쿨에 지원, 작년 12월6일께 합격통보를 받았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이 씨는 사망한 아버지와 군대에 나간 형들을 대신해 병든 어머니를 부양하려고 고등중학교 4학년(14∼15세) 때부터 장사를 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는 군 징집장을 받고 더는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1998년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다.


이 씨는 “중국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살면서 탈북자를 변호해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중국 옌벤(延邊)지역의 농촌에 숨어 농사일하던 이씨는 탈북 이듬해 총신대 교수들이 중국인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참여해 3년 동안 성경만 암송했다. 그는 “중국에서 성경공부를 했던 경험이 작년에 LEET를 치를 때 큰 도움이 됐다”며 “후배들에게도 논술을 잘하려면 성경을 많이 읽으라고 얘기하곤 한다”고 전했다.


2002년 한국에 입국한 이 씨는 이듬해 남한 출신 여성 김모(38)씨와 결혼하고 곧바로 `아빠’가 됐다. 김씨는 선교단체 간사로 중국에 단기선교여행을 갔다가 이씨를 만났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이 씨는 전자회사와 유통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택시기사, 화물운송기사 등을 전전하며 가정을 부양했다. 하지만 그는 배움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학으로 공부해 2007년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2008년 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정작 로스쿨에 합격했지만, 이 씨는 당장 1학기 등록금부터가 걱정이다. 학생인 이 씨와 유치원 보육교사를 하는 아내의 수입으로는 로스쿨 등록금과 비싼 교재비를 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씨는 외대 재학 중에도 아르바이트로 학업을 마쳤고 2009년 9월부터 1년 동안 가족의 생활비를 벌려고 대학을 휴학하고 자동차정비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도 이 씨는 마지막 학기에 전 과목 A+를 받는 등 평균학점이 4.0을 넘었다.


그는 대학 재학 기간 농어촌 봉사, 불우이웃 돕기, 연탄배달 등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독거노인 사랑의 반찬나누기’에도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등 나눔에도 적극적이었다.


이 씨는 “목표가 있으면 길도 생기는 법이다.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학업과 가장의 역할을 병행하며 열심히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노력과 의지만 있으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는 앞으로 법률에 대한 지식이 없어 사기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국내 정착 탈북자들과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법조인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로스쿨에 입학했거나 입학 예정인 탈북자는 현재 이 씨를 포함해 3명이다. 2011년 3월 경북대 로스쿨에 입학해 `탈북자 1호 로스쿨 입학생’으로 알려진 이영수 씨는 합격 소식이 알려진 2010년 12월부터 사회 각계의 격려와 후원을 받았다.


또 연세대 교육학과 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을 중퇴하고 올해 3월 서강대 로스쿨에 입학할 예정인 탈북자 출신 강룡 씨는 대한변호사협회 산하 사랑샘재단 장학생으로 선정됐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