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마지막으로 ‘반대’에 표 던졌던 14명의 주민



▲북한 김정은이 2015년 진행된 우리의 지방의회격인 도··군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투표하고 있다. /사진=연합

어느 나라나 총선이나 대선은 국내외에서 관심이 집중되는 정치적인 사건이다. 그 나라의 국민은 물론 관심이 있는 외국인도 급변하는 선거 판세에 연일 흥미를 갖고 지켜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 자체를 숨길 수 있다는 건 상상을 하기 힘들다.

그러나, 북한은 그런 선거가 있었다. 바로 1959년 실시된 최고인민회의 보충 선거였다. 그해 7월 19일에 진행된 이 선거는 비밀 속에 진행되었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는 이 사실을 전하지 않았었다.

6.25전쟁 이후 북한의 첫 선거는 1957년에 진행되었다. 여타 공산권처럼, 선거구마다 후보자가 1명뿐이었고, 공식 결과는 “참가자 99.99%, 찬성투표 99.92%”이었다. 즉, 아직 김일성식(式) “100% 참가, 100% 찬성” 제도가 도입되진 않았고, 소련처럼 국내에 극소수라도 출마한 후보자에게 반대할 수 있는 공민이 존재할 수 있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말기는 북한에선 대숙청 시기였다. 8월 종파 사건 때 최창익과 윤공흠을 비롯한 반(反)김일성파의 음모 실패로 김일성이 온건한 사회주의를 주장하거나 김일성에 조금이라도 반대한 당 간부를 무참히 숙청하였다. 결국 1957년에 선출됐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4분의 1 이상이 숙청되었고 대의원 신분을 상실하였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보충 선거를 진행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던 것이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북한 매체는 이 선거에 대한 아무런 보도를 하지 않았다. 이런 결정의 이유는 숙청된 자의 수를 숨기고 싶어 하는 의지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소련 대사관이 이 선거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당시 주(駐) 북한 소련 대사관 2등서기관이었던 바쿨린 씨는 보고를 통해 이 선거에 대한 실상을 남겼다.

바쿨린 서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1957년에 선출된 대의원 215명 중에 51명이 숙청되었고 5명이 사망하였다. 숙청된 대의원 중에 조선노동당 당원28명, 북조선민주당 당원 7명, 천도교청우당 당원 8명, 인민공화당 당원 2명, 근로인민당 당원2명, 건민인민연합 당원 1명 그리고 비당원 3명이었다.
 
숙청된 사람들 중에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달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병제, 북조선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홍기황, 북조선민주당 평양시 위원회 위원장 김명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위원장 겸 근로인민당 위원장 리영, 북조선불교도련맹 위원장 김세률,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위원장 김창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두봉, 내각 부수상 박의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현질종, 무역상 진반수, 식량수매상 오기섭, 석탄상업상 류축운, 수산상 주황섭, 조선중앙통신사 사장 박무, 총정치국장 최종학 등 고급 간부들도 포함되었다.

선거구마다 투표자들에게 “귀 선거구 대의원이 반인민행위자로서 숙청되었다”고 직접 설명하였다. 이 보충 선거는 56개의 선거구에 진행되었고, 이들 중에 55개의 선거구에 조선노동당 당원들이 출마하였고, 나머진 1개의 선거구에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박식덕이 출마하였다.

선거방식 자체도 역시 기존 선거와 조금 달랐다. 1948년과 1957년 당시엔 선거구마다 흰색과 검은색 투표함이 2개 있었고, 찬성자는 백색에, 반대자는 검은색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놓아야 했다. 형식상 투표자가 투표용지를 주먹에 넣고, 손을 먼저 백색 투표함에 넣고, 다음에 검은색 투표함에 넣으면서 본인이 선택한 투표함 안으로 투표용지를 넣어야 했지만, 이 규칙은 잘 알려지지 않아 사실상 선거의 비밀은 보장되지 않았다. 때문에 자유주의 나라에서는 이 제도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1959년 선거 당시엔 소련과 같은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선거구마다 붉은 투표함이 하나 있었고, 찬성자는 그냥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었고, 반대자는 후보자의 이름을 줄을 그어 지워야 했다. 선거구엔 칸막이도 설치되었지만, 칸막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반대 투표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밀 선거의 원칙은 지켜 지지 않았다.

선거의 공식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전체 56개의 선거구에 유권자 120만 명 중에 99.99%가 참가하였고, 14명 (0.00001% 정도) 제외에 전체 찬성 투표하였다.”

물론 최고인민회의는 실권이 없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 선거 자체가 북한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에 관련해서는 3가지 정도가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숙청된 대의원 비율을 보면 당시 숙청이 얼마나 대규모였는지 짐작된다. 둘째, 선거 때 반대 투표한 북한 사람 14명은 북한 역사상 마지막으로 반대 투표한 자였다. 1962년에 진행된 다음 선거부터 현재까지는 ‘100% 찬성’ 결과만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재 체제가 얼마나 진실을 잘 은폐하는지 볼 수 있다. 이 선거에 100만 명 이상 참가했지만, 북한 매체 보도가 없어 현재까지 북한학 연구에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 같다. 북한 역사에 이런 숨겨진 비밀이 얼마나 많은지 궁금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