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사람의 ‘고단한’ 남한사람 되기

’기약 없는 굶주림 – 목숨 건 탈북 – 쫓기는 제3국 생활 – 부푼 한국행, 그러나 고달픔은 끝이 없고….’

북한이탈주민(새터민)후원회(회장 김일주)가 최근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거쳐 최우수작으로 선정, 인터넷 홈페이지(www.dongposarang.or.kr)에 소개한 ’새터민 수기’에는 탈북민이 남한 사회에 뿌리내리기까지의 고단함이 적나라하게 묻어난다.

현재 대학생인 최금희(2001년 입국)씨는 “14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다는 부모님 없이는 하루도 못살 것 같은 생각에 어쩔 수 없이 1997년 2월 차가운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고 탈북 동기를 밝힌 뒤 고달팠던 탈북과 남한 정착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경찰들만 보면 죄인처럼 숨어야 했고 러시아를 통해 가려다가 얼어 죽을 가능성이 많다는 권유로 다시 길을 떠났으며, 배를 타고 오려다가 3일동안 바닷물을 실컷 먹는가 하면 실패로 돌아가 감옥까지 갔어야 했다”며 한국행을 꿈꾸다 좌절을 겪은 4년간의 중국생활을 회고했다.

그의 가족은 마침내 2001년 다시 한번 한국행을 시도해 중국 남방을 거쳐 미얀마를 통해 한국 입국에 성공했으며, “비행기에서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바라보면서 엄마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고 나도 감정이 솟구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고 당시 감회를 적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국땅을 밟은 뒤에도 딱딱한 입국과정 조사, 탈북민에 대한 냉대, 걱정으로 가득찬 하나원 생활 등 ’충격과 환상 깨기’의 연속이었다고 소개했다.

취업전선에서는 북한사람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지 못했던 것은 물론 남한 사람들로부터 ’세금 축내는 탈북자’나 ’적응 못하는 새터민’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때는 화는 물론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하지만 북한에서 다닌 초등학교가 4년제라는 이유로 남한의 6년제 초등학교 학력 인정이 안돼 검정고시 학원과 대안학교를 다니며 다시 초등학교부터 중-고교과정을 모두 거쳐 당당히 대학에 진학했을 때부터는 ’남한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자신이 좌절할 때 ’너는 북한 사람 2천만명 중 한명으로 한국에 온 특별한 사람’이라고 용기를 준 부모와 ’어떻게 북한을 탈출했니’라거나 ’어떻게 살아왔니’ 등을 묻지 않고 탈북자에 대한 편견없이 대해준 대안학교 선생님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최씨는 아울러 “나는 힘들게 자라왔지만 그 만큼 나에게 얻어진 것이 많음을 알게 된다”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나를 발견해가는 시간이 나에겐 천국과도 같다”고 고난을 극복하면서 얻은 자신감을 한껏 뽐내기도 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