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법 ‘한우물’ 장명봉 교수

“북한법 연구가 ’이상한’ 학문으로 보이던 때가 있었죠. 지금처럼 북한법을 알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1960년대 당시 민족 분단이라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다 북한법 연구에 뛰어들었던 20대 법학도는 이제 돋보기 안경을 쓰고 흰머리도 몇가닥씩 난 노 교수가 됐다.

그러나 40여년간 북한법으로 ’한 우물’만 파온 그는 지금 국내에서 북한법 연구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6일 서울 정동에서 만난 북한법연구회 장명봉(67.국민대 명예교수) 회장은 “북한법에 대한 관심이 요즘처럼 컸던 때가 없는 것 같다”며 “남북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만큼 북한법을 알아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법연구회는 1993년 국내 법학 교수와 변호사 등 10여명이 “남북한의 통일 과업에 대비하고 법학 발전에도 이바지하자”는 데 뜻을 모아 세운 모임으로, 현재는 60여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당시 국민대 교수로 있던 장 회장은 창립 멤버로 참가해 2003년 회장을 맡은 이후 지금까지 연구회를 이끌고 있다.
연구회는 북한법과 남북관계법, 통일관련법 등의 분야에서 통일과 관련한 법.제도적 과제를 주제로 꾸준히 연구 발표회를 열어와 지난달 124회를 맞았다.

장 회장은 “남북 분단 이후 몇몇 사람이 개별적으로 북한법을 연구해오다 80년대 말부터 정치적 상황이 변화하면서 연구 모임을 만들게 됐다”며 “초기 법전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졌으나,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최근엔 실무적이고 구체적인 분쟁 사례 연구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발표회에서 다룬 주제는 통일후 북한의 토지소유권 재편, 남북 교류협력에 따른 형사사건 해결, 개성공단 사업촉진 방안 등이었으며, 법원이 지난해 6월 탈북자의 이혼소송이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발표회에 참석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장 회장은 “최근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등 대북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계약서 작성 방법부터 근로 분쟁 해결 방안까지 실무적이고 구체적인 법률 자문을 구해오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해주경제특구 추진도 논의되는 등 남북 경협이 활성화되고 있는 만큼 남북한 당국이 하루빨리 사법적 공조 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장 회장은 현재 대학원에서 북한법 석.박사 과정을 지도하고 있는데, 전체 학생 10여명중 절반을 변호사가 차지하고 있는 것도 북한법에 대한 ’실질적인’ 수요가 생겼다는 것을 뜻한다.

매 학기 강단에 올라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는 그는 한국의 법학도들이 무엇보다 ’분단 국가’에 살고 있다는 점을 잊지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하자, 정보화.세계화 시대 전문 법조인을 양성하자는 목소리가 많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분단 국가라는 특수성이 있다”며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자주 잊어먹고 있지만 법률가를 양성할 때도 이러한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국적’인 법조인을 배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이를 위해 200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민대 대학원 법학과에 북한법 전공 과정을 개설하고 ’북한 법제의 변천 연구’, ’남북 교류협력 법제 연구’, ’한국 통일과 법통합 연구’ 등을 강의해 왔다.

그는 자신이 1972년 ’북한 사회주의 헌법상의 통치구조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던 때를 회상하면서 “그때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학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대학생 때 5.16 군사 쿠데타를 겪으면서 민족 분단에 따른 구조적 모순이 다시는 이 땅에 일어나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이 평생을 이어온 숙제가 됐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맡아 수시로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한이 2004년 발간한 대중용 법전의 증보판을 입수, 2006년 공개하는 등 ’현역’ 법학자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북한도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을, 최고인민회의와 산하 상임위원회에서 법률을, 남한의 시행령에 해당하는 시행규정은 내각에서 각각 채택한다”며 “남한 사람들의 선입견과 달리 북한도 교시에 의한 통치에서 점차 법에 의한 통치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새해 계획을 묻자 장 회장은 “남북한이 분단돼 있는 한 지금까지 해온 일이 앞으로도 ’진행형’이 될 것”이라며 “당장 새해 첫 월례회 발표자부터 섭외하러 가야 한다”며 돋보기 안경 너머로 웃음 지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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