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민주화 운동가 유재길의 ‘좌절’과 ‘도전’

이번 총선 서울 은평을 지역구에 새누리당 단수 추천으로 공천을 받은 유재길 후보의 출마가 좌절됐다. 친박의 공천 전횡과 김무성의 운동권식 ‘도장’ 투쟁, 그리고 막판 뒷거래의 결과이다. 유권자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막장 정치의 불똥은 결국 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한 3인에게 튀었다. 공천을 하고도 출마를 좌절시킨 공당(公黨)의 기망(欺罔) 행위에 대해 법이 어떤 판단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의 정치적 좌절과 상처가 너무 커 보인다.       

유재길은 새누리 비박계를 대표하는 이재오 의원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이유로 친박 또는 진박 후보로 불렸다. 어떤 이들은 그를 ‘뉴라이트’로 분류했다. 그러나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가 스스로를 친박으로 부르거나 이에 편승하려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는 정치의 명분으로 한반도 통일시대와 선진화를 들었다.   

필자는 그와 함께 중국 동북 3성(헤이룽장(黑龍江)·지린(吉林)·랴오닝(遼寧)) 북중접경지대에서 북한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지하 민주화 운동을 펼쳤다. 유재길은 앞서 1999년 중국으로 왔다. 그는 젊은 시절 의사의 꿈을 접고 민중혁명의 길을 선택했고, 1990년대 중반 스스로 NL(민족해방) 노선의 오류를 깨닫고 참회하듯 북한 지하 혁명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가끔 처음 중국 연길 공항에 홀로 섰을 때의 막막함과 책임감을 회상하곤 했다.   

그를 북중 변경의 허름한 술집에서 만났을 때, 그는 활동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자금 마련빨래라고 했다. 자금 마련을 위해 중국에 몇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빌린 돈의 만기가 돌아올 때면 숨이 탁탁 막힌다고 털어놨다. 중국 공안과 북한 특무 모두를 피해야 하는 위험,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동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곤경을 극복해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최근 그가 개인 페이스북에 남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활동 중 2012년 중국 국가안전부에 체포돼 114일 억류됐다가 풀려나 귀국한 뒤에 그가 내놓은 것은 영웅담이 아니라 처절한 실패담, 그리고 자기반성이었다. 어떨 때는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본인에게 냉담했다. 그는 1980년대 한국 학생운동의 조직 활동과 투쟁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에 적응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오류였으며, 북한을 상대로 하려면 그 수십 배, 수백 배의 능력과 용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북한 민주화의 길이 막히자 그는 한국 정치를 통해 북한의 민주화와 통일시대를 준비하겠다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은평을에 도전하는 그에게 누구나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좋은 경험으로 삼으라’고 했지만 그는 1년 만에 여론조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대안 부재론’을 극복하고 새누리 후보로 단수 추천됐다. 그는 경선을 통한 본선 진출 경쟁력 제고를 원했지만 새누리당의 후보인 이상 당의 판단에 따랐다.

이번 총선을 지켜보는 북한 주민들이 있다면 아마 유재길은 그들이 응원하는 몇 안 되는 후보였을 것이다. 실제 대북방송을 통해 북한인권운동가 출신 후보의 소식이 방송되면서 당선을 기원하는 사람들이나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바람이 꺾인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지만, 냉정한 정치 세계에서 그는 며칠 후면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다.

못내 아쉬운 것은 그가 본인의 삶과 이야기, 비전을 국민에게 이야기하는 장도 원천봉쇄된 점이다. 엘리트 의식과 입만 살아있는 여의도 정치에 지친 국민들에게 청량감을 줬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미련이 남는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 물러나는 그가 친박-진박 진흙탕 싸움의 희생양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그의 새로운 도전을 기다린다. 유재길이 걸어온 길이 보여준 것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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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 기자
sylee@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