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대학원대학교가 설립한 북한미시연구소가 6일 개소했다. 미시(微視)는 작고 세밀하게 본다는 의미다. 그만큼 연구소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북한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북한 연구는 김정은과 파워엘리트들의 동향과 노동당의 정책 변화 등에 집중한 반면,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 연구를 통해 체제를 평가하고 전망하는 연구는 미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은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7일 데일리NK와 인터뷰에서 “기존 북한 연구들은 정책 지향적이었고, 현안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북한의 변화 주체는 지배층이 아닌 주민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일상생활 연구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제도나 경제, 시장 등이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면서 “그동안 중요하게 다뤄졌던 정치적 사안·권력 구도와 관련된 연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을 통해 북한 권력·체제를 평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미 연구소는 ‘북한 문화예술사전 구축 프로젝트’와 남북접촉지대(개성공단, 남북회담장, 탈북자 거주지 등)에서의 남북민 관계 연구 등에 돌입했다. 2만여 명이 넘는 탈북자들과 북한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을 통해 북한 사회의 미시적 영역까지 연구·분석하겠다는 계획이다.
연구 활동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북한대학교대학원 등의 연구진과 상호 협력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며, 북한 사회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요구되는 만큼 탈북자 출신 석·박사 연구진들의 참여도 적극 유도할 방침이다.
특히 연구소 측은 ‘고난의 행군 세대’로의 세대교체가 북한사회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면서 관련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이 소장은 “70~80년대 세대는 ‘새 세대’, 8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을 ‘고난의 행군세대’라고 칭하고 있는데 이들은 기성세대의 인식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들은 국가의 혜택도 받아본 바 없으며 역사적으로도 분단이나 제국주의 투쟁에 대한 경험이 전무(全無)해 사상·정치성이 매우 약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경제 붕괴·식량난 등으로 북한 당국은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할만한 것이 없다”면서 “김정은은 새로운 사업 등을 통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판 소녀시대’로 불리는 모란봉 악단의 파격적인 변화나 놀이시설 개·보수 등도 새로운 세대들의 감성에 맞추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다.
더불어 이 소장은 북한 미시연구의 핵심소재인 장마당에 대해서 ‘사적(私的) 네트워크’가 발달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믿을 수 있는 가족·친척 혹은 친구들과 시장 경제활동을 벌이는 사적 네트워크가 장기적으로 커지면 주민들 간의 감시망인 ‘3호담당제’ 같은 공적 시스템과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북한의 사적 네트워크 형성에는 시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시장 내부에 식당·당구장·초보적인 오락실 등 지속적인 대화가 가능한 공간 유무 파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사적 네트워크의 발달은 북한의 도매, 소매, 소비자로 이어지는 유통 네트워크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기존에 국가가 정해준 공적 네트워크보다 새로운 인적 네트워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북한 당국의 시장 관련 정책에 대해 이 소장은 “북한 당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시장을 끌어안고 가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사회에서 엘리트들도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비율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를 배척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지도층의 목표는 국가 발전이 아닌 기득권 유지를 위한 현상 유지”라면서 “시장은 이미 북한 체제를 지탱하고 있으며 북한 당국은 시장을 포기할 상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