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병영추억 ‘잃으면 훔쳐서라도 보충하라’

나는 지금부터 20년전 잊을 수 없는 북한군에서의 추억이 있다. 그 당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둑질이라는 것을 해봤다.

때는 1987년 3월 야외훈련 기간이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에서 우리는 5명을 한 개조로 하여 극한상황에서의 무선통신 이동훈련을 하고 있었다.

날씨가 얼마나 추었던지 고참 중사들 중엔 귀가 얼어 퉁퉁 부어올라 진물이 흘러내리는 사람도 있었고, 발가락이 얼어서 동상을 입은 병사들도 있었다.

나는 입대 2년차 신병이라 고참 하사관들의 극진한 배려 속에 첫 야외기동훈련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래도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나른해졌다. 북한에서 당시 군 생활은 10년이 넘어 2년차는 신병에 불과했다.

약 한 달간의 야외훈련으로 지친 소대원들은 모두 오랜만에 따뜻한 병영에서 목욕도 하고 속내의도 갈아입고 푹 쉬게 되었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그날 우리 분대가 야간 대기근무 순번이 됐다. 우리 분대는 각자 2시간씩 교대근무를 서기로 하고, 그 외 대원들은 쉬기로 했다.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가 나의 근무시간이었다.

밤 11시가 되어 겨우 눈을 뜨고 일어난 나는 일단 밖에 나와 찬 눈보라를 맞으면서 잠을 깨고는 병영을 둘러봤다. 취사장, 식당, 병실 등을 둘러보고 난 다음 병실의 난방을 담당하는 화구 간에 굵은 통나무를 몇 개 더 집어넣고 숯덩이를 이리저리 뒤적이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오랫동안의 야외훈련에서 지친상태에다 따뜻한 불길 앞에 앉아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이다. 얼마나 잤을까,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에 잠에서 깬 나는 시계를 보았다. 벌써 12시 50분이 되어있었다. 정확히 10분 후 나는 다음 교대자인 김영철 하사를 깨워서 인계하고 잠자리에 다시 누웠다.

그리고 약 5분이 지났을까, 김 하사가 날 깨운다. 김하사는 “야 옷 입고 따라 나와”하고는 나를 소대 취사장으로 데리고 갔다. 취사장 안에 들어선 나는 소름이 끼쳤다.

소대 화식 도구는 물론 아침용 쌀에 반찬거리까지 깡그리 없어진 것이다. 분명 내가 잘 때 누군가가 통째로 도적질해 간 것이 틀림없다. 김하사는 나를 향해 “야, 어찌된 일이야? 말을 해봐”라고 다그쳐 됐다. 이제 나에게 들이닥칠 추궁에 나는 그저 우들우들 떨며 “깜빡 잠이 들었는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고 변명했다.

사태의 심각성에 김 하사는 즉각 병실에 들어가 분대장과 부소대장, 그리고 직일관을 깨운다. 나는 겁에 질려 눈보라치는 병실입구에서 떨고 있었다.

드디어 부소대장이 “소대 기상” 구령을 내리고 깊은 잠에 들었던 소대원들은 “웬 일이냐며?”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나는데 “빨리 군복입어”라고 부소대장이 다시 고함친다.

병실에 정렬한 소대원들이 자초지종을 설명 듣고 온갖 비난의 눈길을 나에게로 돌리는 순간 부소대장의 욕설이 고요한 병실을 흔들었다.

“야, 누가 제일 어린 신병을 근무에 넣었어? 대가리(머리) 큰 놈들이 근무를 서고 막내를 재우면 안 되냐? 이 새끼들아” 하며 부소대장은 분대장과 7, 8년차 고참 병사들에게 욕설을 해댔다.

아무튼 그날 밤 내가 화구 칸에서 졸았던 시간은 약 1시간 정도였는데 어떤 겁대가리 없는 도둑놈이 깡그리 도적질해갔던 것이다. 잠시 후 부소대장은 “수법으로 봐서는 분명 보병새끼들이야, 아침쌀은 몰라도 반찬거리까지 깡그리 가져간걸 봐서는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래도 보급형편이 괜찮은 민경부대병사들이 같은 민경중대에 와서 도둑질을 할 수 없다는 부소대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 소대 주변에 약 1km 거리에 사단본부와 무선중대가 있고 그곳에서 다시 1km 정도 가면 6보병연대 1대대가 있는데 이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부소대장은 일단 소대를 세 개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실패하거나 잡혀서 중대에 귀환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못 박았다. 놀랍게도 우리는 다른 부대병영으로 도둑질을 나가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해서 허둥지둥 따라가는 나에게 김영철 하사가 “군대에서는 별 수 없어. 일단 도둑맞은 놈이 멍청한 거구, 도둑맞었다구 소문내면 더 바보가 되니까 이런 경우는 다시 조용히 다른 부대에 가서 똑같은 수법으로 훔쳐 보충하는 게 군대야”라고 설명해 주었다.

듣고 보니 그럴 듯 했지만 생애 처음으로 떼거리 도둑질을 하러 간다는 사실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아무튼 한 지점에서 소대는 3개조로 헤어졌다. 우리 분대는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라는 분대장의 주장으로 담이 크게도 사단본부 경리과 식당으로 쳐들어갔다.

우리는 줄을 맞춰서 벽에 붙어 경리과 창고 쪽에 접근 하였다. 두 명의 고참이 이곳저곳 정찰하고 온 결과, 순찰병은 없고 취사장 안에 있는 취사병들 방에서만 불빛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단 취사병들에게 발각되면 단숨에 제압하기로 결정하고 취사장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취사장 안에는 반짝거리는 알류미늄 그릇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일단 나와 부분대장이 취사장 안에 들어가고, 일부는 취사병들의 방문 앞에서 동태를 살피고 나머지는 밖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나는 취사장에 들어가 가지런히 정리된 접시부터 한 아름 안고는 살금살금 나와 문밖에 대기조에 넘겨주고 다시 그런 식으로 3차례 더 가지고 나오는 데 분대장이 됐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우리는 도적질한 알루미늄 그릇들을 등에다 가득 지고 다시 산으로 들어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새벽산길을 이리저리 에돌아 부대로 돌아왔다.

우리분대가 제일먼저 도착하고 조금 뒤 다른 분대들도 돌아오는데 그날 밤 우리소대 3개 조가 훔쳐온 화식도구들은 기존의 화식도구의 무려 다섯 배가 넘는 것들이었다. 그래도 모두들 양심은 있었는지 쌀은 훔쳐오지 않았다. 우리 소대는 여분으로 보유하고 있던 전투식량(건빵)으로 그날 아침은 간단히 해결했다.

그날 어젯밤 북새통은 언제일이냐 싶게 지나가고 소대는 평일과 같이 일상대로 하루를 보냈다. 소대군관(장교)들도 밤새 긴박했던 사정을 모르는 듯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 북한군에서는 무언가 분실하면 무조건 조용히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보충해놓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남한 군대 생활에서도 이러한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으나, 취사도구를 뺏고 뺏기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후일 몇 년이 지나서 내가 고참이 되었을 때도 점검시 무언가 없어졌다고 떠들썩하는 부하들이 있으면 “보충해놓으면 될 것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 머리를 쓰란 말이야”하고 씽긋 넘어갔다.

아무튼 우리소대뿐만 아닌 모든 북한군 부대들에서 훔쳐서 보충하는 길고 긴 전통은 지금도 변함 없을 것이다.

이정연/북한군 정찰부대 출신(98년 입국),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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