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對民사고 90년 서막…대남요원 도끼살해 사건

북한 건설군인들

80년대 후반부터 악화된 북한의 경제상황은 곧바로 북한군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그전보다 식량보급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군인들의 기강해이와 연결됐다. 기강이 해이해진 군인들은 도적질과 민간인 약탈을 감행했다.

이런 가운데 1990년 여름 희천-향산 간 고속도로 공사에 동원된 공병여단 건설부대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이 사건은 북한군의 군기해이 현상의 서곡이라 할 만했다.

사건은 평안북도 향산군의 시골마을에서 지나가는 대남 공작원에게 한 무리의 군인들이 시비를 걸면서 시작되었다.

대남 요원 H씨는 작은 트렁크를 들고 고향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북한 당국에 의해 대남요원으로 차출된 사람이었다.

H씨는 우수한 대남요원으로 양성되어 제3국(한국도 포함)을 들락거리며 임무를 수행하는 공작원(간첩)이 되었다. 이날 H씨는 아버지의 환갑을 맞아 20여 년만에 고향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북한의 대남사업 부서는 7~10세의 어린이들을 차출하여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요원으로 양성한다. 17세 이상의 성인을 대남요원으로 키울 경우 수준 향상에 한계가 있고 써먹을 시간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어릴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 요원의 신원과 관련 자료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남 요원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절대 발설해서는 안된다. 부모에게도 말할 수 없다.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부서가 노동당 대외연락부(사회문화부), 작전부 등이다. 남한과 해외에 공작원을 침투시키고 또 공작원 교육과 지하당을 구축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대남사업의 핵심 부서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사업을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알지 못한다.

공병 건설부대 군인들이 담배 시비

H씨는 경호원을 대동하고 가라는 상부의 지시에 모처럼 가는 고향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부모님을 뵙고 오겠다며 사양하고 홀로 고향으로 떠났다고 한다. 또 공작원이라면 좋은 격술 실력을 갖고 있는데다 자기 나라에서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는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H씨의 고향집은 향산역에서도 20여 리를 더 걸어가야 하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그런데 시골길을 걸어가던 H씨에게 고속도로 공사장에 동원된 공병국 건설부대 군인들이 시비를 걸었다.

옷차림이 말쑥하고 들고 가는 트렁크가 예사롭지 않은 H씨에게 군인들은 “여~형님, 담배 한대 핍시다”며 수작을 걸었다.

H씨는 담배 한 갑을 달라는 군인들의 요구에 트렁크를 열었다. 아버님 환갑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그의 트렁크에는 고급 술과 담배를 비롯하여 각종 외제 선물이 가득 있었다.

이를 본 군인들은 술까지 마시자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H씨는 아버님 환갑때 올릴 술이니 사정을 봐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우리 집이 어디어디에 있으니 정 마시고 싶으면 환갑날 와서 마시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물러설 군인들이 아니었다. 트렁크 안에 있는 선물을 몽땅 노리는 군인들은 생떼를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H씨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도의 공작원 훈련을 받은 H씨에게 전투부대도 아닌 건설부대 군인들이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군인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H씨는 집으로 갔다.

그런데 정신을 차린 군인들이 그날 저녁 부대로 돌아가 낮에 있었던 일을 소대장에게 발설하면서 사태는 커져 버렸다. 자기 부하들이, 그것도 여러 명이 민간인 한 명에게 두들겨 맞고 돌아왔다는 말에 소대장은 “이 바보 같은 XX들아, 사민(민간인)한테 매나 맞고 다니냐”며 노발대발 했다.

다음날 아침 소대장은 “그 사민 놈 집에 가자. 모두 자동차에 타라”고 지시했다. 이미 H씨한테 집 위치도 들었고 아버님 환갑까지 한다고 했으니 작은 산골마을에서 집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환갑날 갑자기 들이닥친 군인들을 보자, H씨 아버지는 아들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혼자 나가 군인들을 달랬다. 하지만 군인들은 막무가내로 날뛰었다. 군인들은 아들을 숨겼다며 노인에게 행패를 부렸다.

보다 못한 H씨는 어머니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면서 ‘지금 상황을 전화로 알리라’고 말하고 집 밖으로 나섰다.

행패를 부리던 소대장은 H씨를 보자 다짜고짜 “저 XX 죽여버려” 하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대남요원이었던 그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또다시 여러 부하들이 두들겨 맞는 꼴이 되자 극도로 흥분한 소대장이 한 군인에게 마당에 있는 손도끼를 가리키며 “야, 그 도끼!” 하고 소리쳤다.

이에 한 군인이 손도끼를 던졌는데, 이것이 H씨의 뒤통수에 박히면서 그는 즉사했다.

소대장과 주동자들 즉결처형, 부대원 탄광 노동자로

얼마 후 검은 안경을 쓴 여성 2명이 헬기로 집 마당에 내렸다. H씨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헬기로 날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H씨의 시신을 확인하고 바로 사태를 일으킨 공병부대로 이동했다.

문제를 일으킨 소대장이 소속된 대대는 전원 비상집합되어 연병장에 정렬 대기했다.

놀라운 것은 헬기를 타고 내려온 여성 2명의 행동이었다.

그들은 “너 따위가 무슨 대대장이냐”며 대대장의 견장을 뜯어내 버렸다. 이어 도끼를 던진 사병과 소대장을 그 자리에서 권총으로 즉결사살했다. 그리고는 “ 이 개XX들아, 너희들 1개 사단과도 바꾸지 않을 사람을 너희들이 죽였다”며 대성통곡 했다.

이들은 대남 비밀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었다. 김정일은 대남 요원들에게 일당 백이 아니라 ‘일당 만’이라는 구호를 내려주고 극진히 아꼈다. 대남부서는 기밀보호를 위해 중앙당 청사 외에 별도의 ‘3호 청사’에서 근무한다.

이 사건으로 대대장 이하 대대 전체가 생활제대(불명예 제대)되어 탄광으로 보내졌고 해당 공병여단은 해산됐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본격적인 식량난이 닥치면서 북한군의 대민 약탈은 더욱 심해졌다. 선군정치를 하는 한 군인들의 대민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