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원래 곧 소련이 세운 정권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학술계엔 이 같은 사실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북한을 연구하는 대부분 학자들은 소련의 영향을 받은 북한의 모습에 “일제 유산” “민족의 전통” “주체적 북한 정권의 정책”이라는 설명을 붙이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중국이나 동구권보다 북한에서 소련의 영향을 받은 모습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북한 군대도 마찬가지다. 1948년 2월 8일에 소련 지도부의 허가에 따라 창건한 조선인민군이 1950년대 중기까지 소련에 부화뇌동해 거의 소련군을 복제하다시피 했다. 소련군의 편제, 군사 직위 및 계급, 군복 및 계급장, 규칙 등을 차용한 것이다.
또한 1955년에 나온 “조선인민군 내무규정”에 따르면 지휘관은 병사들에게 “동무들 안녕하십니까?” 아닌 “동무들 건강하십니까?”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러시아 인사 말 “즈드라스드우이떼”(Здравствуйте!)를 직역하면 “건강하십니까?”인데, 이 때문에 이런 매우 어색한 군사 규칙까지 나왔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해 보인다.
1950년대 말 김일성 정권은 소련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얻었다. 그런데, 김 씨 정권은 이를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북한 군대의 소련식 특색은 현재까지 이어진다. 현재에 북한 군대를 “소련군의 복제”라는 부를 수 없겠지만, “소련식 군대”이라고 표현하는 건 심한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북한군에 1952년의 마지막 날까지 장교 군사 계급이 없었다
사회주의권에서 군사 계급 체계 자체를 폐지한 사례가 있다. 1935년까지 소련군, 문화대혁명 시대 중국, 당시에 중국의 위성 국가였던 알바니아에서 계급 제도가 폐지된 사실은 군사 학자에게 비교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군사 계급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건 덜 잘 알려져 있다.
사실 북한군에 장교 군사 계급 체계는 1952년 12월 31일에 도입되었다. 즉, 6‧25 전쟁 당시엔 인민군에 장교 계급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하여, 군사 직위(여단장, 부분대장 등)들이 사용되었고, 군인의 견장은 계급이 아닌 직위의 상징이었다.
이 제도의 기원도 역시 소련에서 찾을 수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1935년까지 소련의 붉은 군대는 계급이 없었고, 대신하여 군사 직위 제도를 사용했는데 북한군의 직위 제도는 이 옛 소련 제도의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
병사 출신 장교
군인들은 병사와 장교로 나눈다. 이 제도의 기원을 찾아보면, 중세시대의 귀족 제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 일반인들은 병사로, 귀족들은 장교로 복무하였다. 그리고 일반인에 귀족 신분이 수여되는 게 어려웠던 것만큼 병사가 장교로 되는 것도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다. 이와 관련 독일 제국 해군에서 “인민 장교” (Volksoffiziere)라는 특별한 명칭도 있었다.
여기에서 한국이나 다른 나라 군대엔 일반적으로 병사 출신 “인민 장교”가 매울 드물지만, 북한에선 그렇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김정일 시대부터 북한에서 군관(장교)이 되려는 사람은 군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사실상 필수적으로 병사로 복무하여야 한다. 이 때문에 북한 장교들은 병사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고, 이 제도가 북한 군내 질서와 분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 체제를 ‘봉건주의’라고 간주한다. 특히 김 씨 일가를 “왕조”이라고 칭하거나 김정은을 “정은 1세”라고 비꼬기도 한다. 이런 봉건주의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보다 군대 내에선 비교적 평등적인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예외적이자 흥미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0년 복무기간과 여성 징병제
북한 복무 기간은 세계에서 제일 길다. 한국 병사들이 2년 정도 복무하는데, 북한은 5배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여성들도 징병제 대상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에 대항할 수 있는 대규모 병력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 병사들을 다양한 건설 프로젝트에 값이 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목적으로 설명한다.
여기에 필자는 하나의 가설을 추가해 보고자 한다. 북한에서도 청년은 사회에 가장 활발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집단이다. 북한은 이런 집단을 10년이라는 복무 기간을 통해 군대에 옭아매는 건 아닐까. 장기 군사 복무 체계를 통해 북한 정권은 청년들을 쉽게 통제할 수 있다. 즉, 북한 정권은 이런 제도가 체제 안정화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