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공군, 일본군 출신이 창설 주도”

▲ 신의주 항공대에서 김일성(앞줄 가운데)과 기념촬영한 이활(왼쪽)과 왕영(오른쪽)

북한은 해방 이후 1948년 2월 조선인민군 공군(空軍) 창설 당시 일본군 출신 조종사와 일제기관에 복무한 항공기술자들이 주도한 것으로 북한 문헌을 통해 확인됐다.

김일성은 조선인민군 공군의 모체가 된 ‘평양학원 항공반’ 창설 연설(김일성 전집 3권 p.217)에서 “항공반 학생들 속에서 정치사상 교양을 강화하는 데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면서 “특히 항공기술자들 중에는 과거 일제 군대에 복무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만큼 그들의 머리 속에 일제 사상 잔재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일성은 이어 “일제 사상잔재를 뿌리 빼고 그들을 민주주의 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정치사상 교양사업을 힘있게 전개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일성은 해방 직후 북한 항공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조선항공협회를 구성, 명예회장으로 일할 정도로 이 분야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북한은 육군과 해군은 빨치산 출신과 소련파들을 대거 간부로 중용해 배치할 수 있었지만, 공군은 소련군 근무자 일부와 일본군이나 일제기관에 근무한 기술자를 제외하고는 항공부대를 육성할 수 있는 인재를 확보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북한 항공사업의 모체가 된 신의주 항공대장 이활(李活)은 일본군 조종사 출신으로 북한 공군 창설과 6.25 전쟁에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화국 영웅’ 칭호까지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1995년 백과사전출판사가 펴낸 『조선대백과사전』에서 ‘이활은 외국에서 비행학교를 졸업한 이후 그곳의 어느 한 신문사에서 비행사로 일하였다. 해방과 함께 귀국해 항공대와 공군창설에 적극 참가, 1952년 1월 김포비행장에 대한 야간 기습전투를 능숙하게 지휘해 B29를 포함한 적기를 격파했다’고 나온다.

조선대 기광서 교수는 “이활이 일본군에서 활약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면서 “공화국 영웅을 더 높이 평가하기 위해 일본을 ‘외국’으로 표기하고, 신문사에 복무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활은 이후 조선인민군 공군사령관을 지내고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신의주 항공대 부대장 출신으로 항공사령관(중장)을 지낸 왕연(영) 등 소련파들이 대부분 숙청을 당하거나 소련으로 망명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공군부대 창설을 준비하며 일본군 조종사와 항공기술자를 우대하고 이들을 군 요직에 적극 참여시킨 것은 북한군에도 친일파 등용이 확인된 것이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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