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남파-사형’..북파공작원의 기막힌 인생유전

대한민국 HID 북파공작원.유족동지회(회장 하태준)가 30일 언론에 공개한 육군고등군법의 판결문에는 대북첩보 수집을 위해 북측에 침투했다 체포된 뒤 다시 남파간첩이 돼 사형판결을 받은 북파공작원 심모(당시 36세)씨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

분단이 빚어낸 이같은 심씨의 인생은 아들 한운(57)씨의 집념어린 추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1943년 일제 관동군에 입대했던 심씨는 45년 8월 해방을 맞아 고향인 강원도 철원으로 돌아왔다.

당시만 해도 북측 관할이었던 고향에서 그는 인민군의 전신인 인민보안대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 일도 49년 형사사건에 연루돼 징역 6월형을 선고받으면서 그만둬야만 했다.

그러던 중 50년 6월에 발발한 한국전쟁을 계기로 심씨는 또 한 번 전환점을 맞았다.

그해 10월 국군에 의해 수복된 철원에서 치안대장으로 활동한 심씨는 1.4 후퇴 당시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육군방첩부대에 입대한 뒤 돌격대장으로 맹활약하면서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탄탄대로일 것 같았던 그의 인생은 55년 9월 대북 첩보수집을 위해 대원 6명을 이끌고 금강산 부근인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 북파됐다 인민군에 발각돼 생포되면서 또한번 기로에 서야만 했다.

그해 11월 북측에 포섭되고 만 그는 평양에서 드보크 설치방법과 공작원 접선방법 등에 관한 밀봉교육을 받고 정부요인 암살 및 육군첩보부대 위치파악 등 임무를 띠고 57년 10월초 개성을 거쳐 남파됐다.

심씨는 서울에 잠입한 지 이틀 만에 육군첩보기관에 자수했지만 군법회의는 그가 합법적인 신분을 취득하기 위해 위장 자수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사형을 선고하고 말았다.

아들 한운씨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59년 육군본부 장교형무소 면회실에서였다고 한다.

최근까지 그와 접촉을 가졌던 유족회측에 따르면 심씨는 가족들에게 “빨리 변호사를 선임해달라”는 소식을 전하고는 행방이 사라졌다.

이후 아버지를 찾기 위한 한운씨의 집념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그리고 47년이 지난 작년 4월에야 아버지에 대한 판결문을 입수하고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하지만 언제 사형이 집행됐고 또 사체는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유족회측은 “한운씨는 아버지의 기일과 유해의 소재라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일념으로 정부측에 사형집행과 관련한 기록 공개를 요구하고 있으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을 낼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