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공작원 가족 “살아있다면 만나야지…”

북측에서 체포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파공작원 41명의 명단이 공개된 직후 이들의 남측 가족은 7일 “체포됐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며 생존 가능성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다.

1969년 5월에 체포됐다고 북측이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 본회의에서 언급한 조건민씨의 쌍둥이 여동생 연립(66)씨는 “살아 계신다면 찾고 싶다. 송환이 어렵다면 이산가족으로 상봉이라도 해야 한다”며 입을 열었다.

전북 고창이 고향인 연립씨는 가난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서울에 올라와서 고생하던 시절 자신이 일하던 답십리의 미장원까지 찾아왔던 오빠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오빠 소식이 끊긴 뒤 친척으로부터 오빠가 HID(대북첩보부대)로 간 것 같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밖으로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살았다”고 회상했다.

연립씨는 오빠가 `서부전선 전사’로 기록돼 있는 호적등본을 꺼내 보이며 “이 심경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빠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을지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북측이 1969년 2월에 체포했다고 주장한 이호식씨의 여동생 순옥(59)씨는 명단에 오빠의 이름이 올라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정말 큰오빠가 맞을까, 혹시 동명이인은 아닐까”라며 아직도 반신반의하고 있다.

하지만 순옥씨는 기억을 더듬어 북측이 언급한 이씨의 체포시점이 북파공작원으로 간다며 큰오빠가 집을 떠났던 시기와 대체로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에 “오빠가 맞는 것 같다”고 확신했다.

순옥씨는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큰오빠는 여동생(당시 12세)에게 `갔다 오면 부자로 만들어준다고 했다.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하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큰오빠는 자기 한 몸 희생해서 가족을 살리려는 일념에 북파공작원으로 지원한 것”이라며 “7∼8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까지 큰 오빠의 이름을 부르셨다”며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순옥씨는 “호적에 전사자로 올라 있어 죽은 줄로 알고 있었는데 만일 북에 살아 있다면 생사확인부터 서둘러야겠다”고 절절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경기 구리시에 있는 순옥씨의 집에는 이제는 초로의 나이로 접어든 4남매가 속속 모여 들어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이씨의 마지막 모습을 회상하며 안부를 궁금해하고 있다.

한편 지난 4일 북파공작원 체포자 명단 41명의 명단을 공개했던 대한민국 HID 북파공작원.유족동지회측은 “명단 확인을 요청하는 가족들의 문의전화 및 방문이 잇따르고 있다”고 밝혔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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