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두차례 電文교환으로 수교

북한 정부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신중국 성립 4일만인 1949년 10월4일 박헌영 외무상 명의의 전문을 중국측에 보내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대사를 교환하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이틀 후인 10월6일 정무원 총리를 겸하고 있던 저우언라이(周恩來) 외교부장 명의의 답신 전문(電文)을 보내 즉각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상호 대사를 파견하자고 회답함으로써 이 날짜로 양국 간에 정식 수교가 이뤄졌다.

외교부장 간의 두 차례 전문 교환을 통해 전격적으로 이뤄진 두 나라의 외교관계 수립과정은 중국 외교부가 신중국 성립 초기인 1949 -1955년 사이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정부끼리 주고 받은 비밀 문건을 모아 펴낸 자료집 ’비밀해제 외교문헌(解密外交文獻)’에서 밝혀졌다.

중국은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1주일 사이 7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북한은 옛 소련(2일), 불가리아(4일), 루마니아(5일)에 이어 중국의 네번째 수교국이 됐다. 중국은 북한과 수교한 날 헝가리와도 외교관계를 맺었다.

26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자료집에 따르면, 북한의 초대 주중 특명전권대사로 임명된 리주연(李周淵)은 1950년 1월17일 김두봉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명의로 작성된 신임장(國書)을 1월28일 류사오치(劉少奇) 중국 중앙인민정부 부주석에게 제정했다.

그러나 중국측에서는 임시대리대사만을 두고 있다가 한국전쟁이 터진 다음인 1950년 8월에야 초대 북한주재 중국대사로 임명된 니즈량(倪志亮)이 부임해 그달 13일 마오쩌둥 주석 명의의 신임장을 김두봉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제정했다.

북한에 앞서 외교관계를 수립한 3개국 초대 주중대사들의 신임장 제정식에는 마오쩌둥이 총리 겸 외교부장 저우언라이와 함께 참석해 신임장을 받았으나 리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 때는 마오쩌둥이 잠시 베이징에 없어 류사오치 부주석과 리커눙(李克農) 외교부 부부장이 참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임 당시 47세였던 리 대사는 함경남도 출신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겸 조선노동당 중앙검사위원이었으며 광주학생운동 및 단천농민폭동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해방후 평안남도 인민위원장 등을 역임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비밀해제 외교문헌’ 자료집 북한 부문에는 박헌영의 수교결정 통보 전문, 저우언라이의 답신 전문, 양국 초대 대사들의 신임장, 북한대사 리주연의 부임후 중국 고위 당국자 면담 및 신임장 제정식 관련 자료 등 11건의 문서가 수록돼 있다,

또 신임장 제정식 후 양측 인사들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초대 중국대사 니즈량에 대한 베이징역 전송 사진, 저우언라이의 답신 전문 초고 영인본, 김두봉과 박헌영의 사인이 들어 있는 북한측 신임장 영인본 등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이들 자료는 비밀문서중 일부분으로서 외교관계 수립의 모든 과정을 파악하는 데는 미흡하지만 중국이 비밀에 부쳐온 북한 관련 문건들을 조금씩 공개해 나가는 추세여서 앞으로 더 많은 자료들이 빛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베이징=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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