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과 북중경협은 서로 대체재일까, 아니면 보완재일까.
보는 시각에 따라 답이 달라 질 수 있는 쉽지 않은 문제다. 남북경협이 막히면서 중국이 경제협력 영역을 가로채기 때문에 대체재 관계를 형성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한국과 중국은 엄연히 다른 시장이고, 북중경협이 향후 남북경협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에 보완재 성격이 강하다는 상반된 견해가 있다.
현실적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사이 북한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밀착하고 있어 북중경협과 남북경협은 대체관계일 개연성은 충분하다. 한쪽을 막으면 다른 쪽으로 돈이 흘러들어 가는 ‘일출(溢出ㆍSpill-over) 효과’의 논리와 비슷한 것이다.
지난 1989년부터 시작된 남북교역은 그 규모(개성공단 제외)가 연평균 56.3%씩 증가해 오다 2008년을 기점으로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2008년 -25.4%, 2009년 -27.0%, 2010년 -36.4%로 남북교역의 감소 폭도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해 남북교역액은 4억7천만 달러에 그치면서 1991년 이후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2010년 북중무역은 전년에 비해 32% 증가한 34억7000만 달러로 중국이 공식적으로 통계를 발표한 1998년 이래 최고치를 달성했다. 북한의 대중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6.9% 증가한 11억8784만 달러로 사상 처음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북한의 대중수입도 22억8000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25.45%나 증가했다. 남북교역을 뺀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로 거의 절대적 수준이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공격으로 남북경협이 크게 후퇴하면서 중국의 대북투자 사업이 기지개를 켜며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2001년 북한의 신의주특구정책이 좌초됐던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新북중경협 시대의 개막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양국간 경제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경제협력이 다면화 되고,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다.
중국의 기업들이 저임금과 노다지를 찾아서 임가공, 제조, 유통, 광물자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북한으로 몰리고 있다. 중국의 정부(중앙, 지방)가 직접 나서 추진한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시간이 갈수록 북중경협의 쓰나미는 거세게 몰아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북중 접경지역에는 물자를 나르는 차량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신의주에는 신압록강 대교 공사와 황금평 개발 준비가 한창이다. 랴오닝성 ‘연해경제벨트 개발계획’과 지린성 창지투(長吉圖)개방 선도구 계획의 실행으로 북중경협의 지평은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50년 사용권을 획득한 나진항 4~6호 부두 건설과 지린성 취안허~나진항까지 도로 및 철도 공사도 곧 본격화될 것이다.
나선 지역에 산업단지를 조성해 30만개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원대한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아파트 건설, 호텔 신축 등 현대화 사업을 통해 나선특별시를 싱가포르처럼 국제도시로 완전 탈바꿈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북한의 전력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이 풍력발전소를 짓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북한 나선지역을 통해 태평양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동북3성의 원대한 꿈이 실행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중국은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고 채굴권을 얻는 방식으로 북한 지하자원을 다 채가는 형국이다. 북한 함흥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희토류마저 ‘싹쓸이’하고자 철산광산에 대한 투자협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에는 300여종의 광물자원이 분포돼 있고 당장 상업화가 가능한 유용광물만 140여종에 이른다. 북한에 매장된 지하자원의 잠재 가치는 70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북중 경제협력 강화가 북한의 경제개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북중경협 자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북중경협 수레바퀴가 순리대로만 굴러간다면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한 발짝 나서는 촉매제로 작용할 개연성이 있다. 대규모의 중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법과 제도를 새롭게 바꿔야 하고, 투자 인프라도 구축해야 한다. 중국 투자가의 입맛에 맞게 자율성도 어느 정도 보장해 줘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북한이 부분적으로나 시장 경제로 방향을 튼다면 우리에겐 득이 될 수 있는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 그러므로 북중경협 확대를 수순방관할 일은 아니다. 남북경협이 추락하는 마당에 북중경협만 급진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을 돌파하기 위해 중국에 자꾸 손을 벌리다 보면 북한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와 한국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지 못해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다. 또한 20년 넘게 쌓아온 남북경협 기반이 송두리째 중국에 뺏길 수도 있다.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경제협력이 재개되더라도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을 수 없게 됨은 자명한 일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북중경협 영향의 기회는 살리고 위협은 막는 지혜가 필요하다. 북중경협과 남북경협을 한쪽이 죽고 한쪽이 살아야 하는 이분법의 논리로만 보지 말고, 현명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중국의 북한경제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대응해 남북경협의 방향과 실천방안이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 제3의 길을 가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한국과 중국간의 상호 경제 의존도를 활용해 한국-북한-중국 3자간 상호 이익 증대를 위한 새로운 경협방식을 모색해 보는 것도 좋다. 중국과 손잡고 동북3성의 대북한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줘야 한다. 물론 북한의 개혁을 유도하고 사업성과 경제성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소주와 맥주는 대체재이지만, 소폭(소주와 폭탄주)을 만들면 새로운 보완재가 될 수도 있다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북중경협과 남북경협을 잘 조화시킬 수 있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개성공단에서 출발점을 찾는 것이 좋을 듯하다. 5·24조치 이후 남북경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불씨가 개성공단이다. 남북이 접촉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소통을 하는 유일한 곳, 개성공단만큼은 더 빛을 발해야 되지 않을까.
개성공단의 안정적 발전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전략이 중요하다. 개성공단 가동으로 북한 주민들의 변화가 느껴지고 있다. ‘시장경제의 맛’이 북한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초코파이가 하루에 10만개가 넘는다. 북한 근로자 사이에 ‘초코파이 계’까지 생겨났고, 장마당에서 현금처럼 유통되기도 한다. 평양 거주 주민들까지 뇌물을 주고 개성공단 취업 기회를 얻기도 한다. 북한이 남한의 경제발전상을 체험하고 시장경제를 배울 수 있는 순기능 역할을 개성공단이 하고 있다.
개성공단 발전을 위해서는 북한의 진정한 협조가 있어야 한다. 중국 공단이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공단으로 거듭난 것은 3통(통행·통신·통관)이 원활하고 경영 자율성이 보장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성공단의 3통 문제와 자율성 보장이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 양질의 인력공급과 생산성 향상, 적정 임금 유지는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나아가 개성공단에 중국을 비롯한 외국기업들도 유치해 국제공단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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