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관계의 산증인 中 투먼시 웨칭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과 마주보고 있는 중국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시 웨칭(月晴)진 마파이(馬牌)촌.

미국 여기자 두 명이 지난 3월 17일 북한군에 잡혀가 일약 유명해진 이 마을은 60년에 걸친 북-중 관계의 변화를 최일선에서 지켜본 산증인이라고 할수 있다.

중국 시사주간지 중국신문주간은 최신호(29일자)에서 ‘북-중국경 왕래인:밥을 먹을 수있는 곳으로 몰려간다’는 제목아래 이 마을이 겪은 북-중 관계를 변화를 소개했다.

다음은 이 주간지의 기사를 요약한 것이다.

『두만강이라는 뜻의 투먼이 형성된 것은 청(淸)나라 말. 당시 굶주린 조선인들이 황무지를 개척하기위해 이 지역에 몰려들자 청나라 조정은 두만강 북쪽 350㎞에 폭 20-25㎞의 지역을 ‘이민간척지’로 지정, 조선인의 이민을 허용했다.

투먼시 8배에 달하는 지역에 조선인 집단촌이 생겨났고, 일본이 패망하던 1945년 동북지방에 조선족이 모두 216만명으로 늘었다.

1970년대 대학을 졸업한후 투먼에서 국경 근무를 했던 장롄구이(張璉괴<王+鬼>)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당시 북한주민과 중국인은 두만강에서 같이 수영도 하고 스케이트를 타며 함께 어울려 놀았다고 회고햇다.

조선족이 인구의 80%인 웨칭에서 영화를 보여주는 날에는 북한 어린이들이 강을 건너와 영화를 보고 돌아 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50년대말에서 60년대초 중-소분쟁이 시작되자 북한은 양 강대국 사이에 끼어 중국과의 관계도 안정이 되지 않았고, 60년대 중반 옛 소련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자 북-중 관계는 악화됐다.

당시 두만강과 압록강에서는 국경 분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웨칭 주민들은 두만강에서 고기를 잡을때 북한군의 동태를 주의해야 했다.

중국인들이 북한으로 몰려간 적도 있었다. 1959-1961년 중국에 심한 자연재해가 발생하자 웨칭주민들은 돈벌이를 위해 밤중에 강을 건너 북한으로 갔다.

북한은 당시 6.25 전쟁이 남긴 폐허를 딛고 경제 건설에 한창이었기 때문에 인력이 부족, 웨칭주민들은 북한에서 순쉽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고 옌볜(延邊)대학 동북아연구소 진창이(金强一) 교수가 증언했다. 옌벤의 상점에서 팔던 쌀을 모두 북한산이었다.

문화혁명은 이 마을에 다시 변화를 가져왔다. 웨칭 주민 리자이허(李在赫)의 조부는 지주로 몰리자 북한으로 도주했다.

또 1966-1968년 북한이 중국을 수정주의, 교조주의, 대국주의라고 비난하자 중국은 국경간 왕래를 중단했고 북한은 주중 대사를 소환했다.

북-중 관계는 1980-1990년초까지 정상을 되찾았다. 리자이허는 80년대초 부모를 따라 북한으로 가 할아버지와 3개월을 함께 지내기도 했다.

한-중이 1992년 수교하면서 북-중 관계는 냉랭해졌고 이와함께 북한은 자연재해가 4년간 계속되고 경제가 악화되자 이 마을에 또 변화가 생겼다.

옌지(延吉) 사람들이 TV세트, 라디오,식량등을 들고 마파이촌에 몰려 두만강가에서 북한 주민들과 밀무역을 시작한 것이다.

마파이촌 주민들은 자신들이 굶주렸을 때 북한이 도와준 옛 정을 생각해 북한에 있는 친척들을 지원했고 ,강을 건너오는 북한 친지들을 배불리 먹였다.

1996년은 기아를 견디지 못한 북한 주민들이 대거 웨칭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한 해였다. 북한 당국은 초기에는 ‘탈북자’로 불리는 이들을 반역자로 분류, 이를 엄중단속했으나 나중에는 관대해졌다.

북한은 2000년이후에는 탈북자가 중국 공안에 잡혀 송환됐을 때 한국인을 만나지 않았고 교회에 가지않았다고 말하면 죄를 묻지 않았다.

웨칭주민들과 북한 주민간의 자유로운 왕래가 완전히 끊긴 것은 2005년 북-중이 새로운 국경협정을 체결하고 국경 관리가 공안에서 군으로 넘어가고서 부터다.

북-중 국경에는 요소요소에 철조망이 쳐졌고, 폐쇄회로 TV도 설치됐다. 두만강에서 수영을 하는 주민 이 부쩍 줄었고 북한 어린이들은 더 이상 영화를 보러 웨칭으로 오지 않았다.

북한 핵 실험은 그러나 웨칭주민들의 일상 생활에는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웨칭에서 불고깃집을 하는 리잉시(李英姬)는 지난 5월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때 식당에서 일하다 흔들림을 느꼈고, 나중에 한국 TV를 보고 핵실험 사실을 알았다.

웨칭에서 멀리 보이는 산의 뒤쪽 지하에서 실시된 북한 핵실험으로 이 일대의 지하수 오염 등이 우려된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하지만 주민들의 일상에는 변화가 없다.

주민들은 평소대로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면서 저마다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다만 미국 여기자들의 체포사건 이후 보는 사람마다 북한측 국경으로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고를 할뿐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