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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회담이 성과 없이 종결되면서 양국관계 뿐 아니라 6자회담 전반에도 부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년 1개월 만에 이뤄진 양측 정부간 협상은 첫 날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회담 첫 날인 7일 북한은 오전 회담을 마친 후 일본이 납치 피해자 전환 송환 등 강경한 요구를 한데 반발하며 오후 회담을 거부했다.
이후 일본 측 관계자들이 북한 대사관을 찾아가 회담 재개를 설득해 이튿날 회담이 재기되긴 했지만, 45분 만에 각자의 입장만을 확인한 채 회담은 종료됐다.
◆ 평행선 그린 北日 대표=쟁점은 역시 일본 납치자 문제였다. 북측 송일호 대사(사진 右)는 “일본의 입장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일본 측의 성의 없는 태도로 이 이상 회담을 진행시킬 의미가 없다”며 회담 결렬을 선언했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8일 “‘생존 납치 피해자 송환’을 무리하기 요구했기 때문”이라며 북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파행된 원인을 일본으로 떠넘겼다.
일본 대표단은 “납치 문제와 과거 청산을 포함한 국교 정상화에 관한 쌍방의 기본적인 입장 표명이 있었다”며 “이로써 이번 회의는 종료됐고, 앞으로 계속 의견 교환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회담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미리부터 예견돼 있었다.
일본은 회담에 앞서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한 조건으로 ▲ 모든 생존자의 귀국 ▲ 진상규명 ▲ 납치 용의자 인도 등을 내걸었었다. 아베 신조 총리 및 고위 당국자들도 “납치 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대북 에너지 지원에 참가하지 않는 것은 물론, 국교 정상화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었다.
북한은 이에 대해 “납치자 문제는 모두 해결됐다”는 기본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현재 북한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자국으로 납치된 일본인은 모두 13명이며 이 가운데 8명은 사망했고 생존한 5명은 2002년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납치 피해자가 모두 17명으로 북한 측의 해명보다 최소한 4명이 많다는 것이며, 일부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믿지 않으면서 납치자 재조사를 통한 정확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 의도적인 日 고립화 작전?=이번 회담을 통해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못하긴 했지만, 북일 양국은 추가 협상의 가능성은 열어뒀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해서도 일본과 납치자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일본 생존 납치자 억류가 계속된다면 테러지원국 해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북한 입장에서 일본과의 마찰이 미국과의 협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
또한, 북한 입장에서는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두고 언제까지 양국관계를 미뤄두기도 어렵다. 일본 입장에서도 북한에 대해 유화국면을 펼치고 있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다.
북한의 송 대사는 일본 측이 요구한 납치피해자 재조사에 대해선 “(과거 청산 논의 등의) 과정을 봐가며 고려할 것”이라고 말하며,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일본의 하라구치 고이치(原口幸市) 일조국교정상화 교섭담당 대사(사진 左)도 “쌍방의 기본적인 입장을 밝히고 서로 잘못된 인상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양측이 계속 의견교환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일부 언론은 “일본 정부는 북한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미해결’ 사안으로 인정하거나 납치문제에 대한 재조사에 들어간다면 추가 제재를 하지 않고 계속 협의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었다.
일본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회담 초반부터 ‘생존자 전원 송환’이란 무리수를 두기 보다는 북한 및 주변국들이 납득할 수 있을만한 대화의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북한이 일본을 고립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회담을 결렬시켰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6자회담 합의에 따라 설치된 5개 실무회의 가운데 북일 회의만 일본의 무리한 요구로 삐걱거리고 있다는 인상을 줘 회담 참가 6개국 중 일본을 고립화시려는 북한의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