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장기수 이인모가 북한인권개선 위해 노력?

▲ 93년 북한으로 송환된 이인모 노인

1993년 북한으로 송환된 비전향장기수 이인모씨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둘러봤으며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제기해 북한 수형시설의 인권실태가 한때 개선된 적이 있다고 최근 중국에 체류중인 복수의 탈북자들이 전했다.

2004년 4월부터 2005년 3월까지 함경남도 영광군에 위치한 55호 단련대(구 ‘22호 교화소’)에 수감되어 있다 작년 11월 다시 북한을 탈출한 박철군(가명, 29세)씨는 “리인모가 북한의 감옥들을 둘러보고 ‘북조선의 감옥은 너무 세다, 남조선도 이렇게 험악하지는 않다’고 김정일에게 제기를 했으며, 그 때문에 2002년부터 감옥 사정이 약간 나아졌다”고 13일 기자에게 말했다.

리인모씨가 북한의 감옥을 둘러보게 된 이유는 본인의 희망에 의해서였으며, 2001년 말 평안남도 평성 교화소와 함경북도 회령 교화소, 평안북도 증산군 11호 단련대,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정치범 종신 수용소 등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그 후로 김정일의 친필지시가 떨어져 일시적으로 보안원들의 구타가 없어지고 기합을 줬다”면서 “(과거의 습관대로) 구타를 한 보안원들은 ‘장군님 말씀을 잊었는가’라고 상급자들로부터 질책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구타 대신 연대기합 받은 적도”

구타가 없어진 이후 기마자세로 장시간 서있기, 재우지 않기, 굶기기, 겨울에 바깥에 세워놓기, 삼각 널판지를 무릎 사이에 끼우고 앉아있기 등의 기합을 받았다고 박씨는 전했다. 그는 “죄수들에 따라서는 차라리 맞는 게 낫지 기합이 더 힘들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구타는 당사자만 당하는 것이지만 기합은 모두가 연대책임을 져서 받는 벌이기 때문에 싫어했다”고 말했다.

또한 박씨는 “리인모의 제기에 의해 2002년에 대사면 조치가 내려져 절반 가량이 출소하기도 했다”면서 “그때 ‘리인모 만세’를 외친 사람이 있다는 우스개거리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2003년 6월 함경북도 온성군 보위부에서 취조를 받았던 탈북자 이덕준(가명, 42세)씨도 “전에는 보위부에서 취조를 받을 때 (조사 시간의) 절반 이상은 맞는 시간이었는데 전혀 구타를 하지 않아 이상했다”면서 “나중에 ‘리인모 노인이 장군님께 제기해 앞으로는 때리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2004년 6월부터 2005년 9월까지 평안북도 증산군의 11호 단련대에 수감되었던 탈북자 최영옥(가명, 여, 52세)씨는 “‘민족과 운명’(북한의 다부작 선전영화로, 11~13편이 이인모를 소재로 제작)에 보면 리인모 노인이 쥐를 잡아먹는 모습이 나와 끔찍하게 생각했는데, ‘11호’에서는 그런 일은 너무 흔한 일이었다”면서 “오히려 감옥에서 40년을 살고도 팔팔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리인모 노인을 보고 남한 감옥은 북한에 비하면 천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구타를 그만두라는 장군님 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으나 자신이 수감되었던 시절에는 구타가 만연했다면서 “우리 과(課)에 죄수들이 600명 정도였는데 하루에 2명 이상 씩이 맞아 죽거나 굶고 병들어 죽어 ‘꽃동산’(사망한 수인들의 집단 무덤을 이르는 말)으로 갔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에 제출한 자료 ‘북한의 인권개선 노력’를 통해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2003년 9월 인민보안성 및 보위부에 ‘고문 등 폭력행위를 일체 근절하고 앞으로 법에 따라 주민을 다루라’는 내용의 지침을 하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중국 선양(瀋陽)= 권정현 특파원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