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장기수의 통탄스런 절망

이두균 선생님!


기나긴 감옥생활 이후 장기수 선생님 몇 분과 함께 개원하신 민중탕제원. 그곳에 가끔 찾아뵙던 최홍재입니다. 오늘 아침 선생님의 ‘김정일 찬양’ 시낭송 모습을 영상으로 뵙고 절통한 심정을 어쩌지 못하고 부질없는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제 마음 속에 언제나 계셨습니다.

96년 제 아이가 출생하자 혁명3세대라시며 보약을 해 주셨지요? 이건 먹여야 하고 저건 물에 풀어 목욕시키고, 그리고 요것으로 잇몸을 닦아주면 아이가 튼튼하게 자랄 것이라시며, 자상하게 챙겨주셨습니다. 이후로도 제 형편은 빤했기에 아이의 장성은 분명 그 약재 덕분입니다. 아이는 이제 저보다 커졌고 녀석의 힘은 당해낼 또래가 없을 정도로 강인해 졌습니다. 평생을 두고 감사한 마음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민족과 인간을 향한 한 인간의 신념의 크기를 선생님들은 生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삶에서 느낀 감명은 여전히 제 마음 속에서 저와 운명을 함께 할 것입니다. 선생님들의 청년시절 꿈은 북이 아니라 한국에서 실현되어 가고 있지만 인간의 이상과 그를 위한 인내의 힘은 결과와는 약간 다른 영역이 존재한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역설적이지만 1999년 김정일과의 싸움을 결심하게 된 것도 선생님들의 삶의 자세에서 느낀 바가 컸습니다. 오로지 인간의 권리, 인민의 자유를 위해 복무하겠다는 최초의 결심에 충실한 댓가로 주어지게 될 외로움이나 비난 등은 선생님들의 인고에 비하면 소소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북으로 가시던 2000년 9월 뵙지도 못하고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 길에 드러누워 막고도 싶었습니다. 인민의 지옥에서 받으실 충격, 수령독재자의 선전수단으로 전락하여 당하시게 될 정신적 고통, 온 생을 두고 지켜왔던 가치가 스스로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저의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영상을 통해 선생님과 김선명 선생님, 그리고 20분의 장기수 분들을 뵈며 저의 걱정이 현실화된 것에서 오는 참담함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김정일 선전 공연에 나오셨던 22분 중에서 선생님은 마지막 낭송시를 맡으셨더군요.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을 나는 영원히 어머니로 모시렵니다”하시는 선생님의 표정은 제가 뵈어 왔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에서 선생님의 눈빛은 소년의 천진함이었습니다. 수 십 년의 감옥이 마치 시간을 정지시켜 그 눈빛을 그대로 간직해 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한없이 따뜻하고 때론 강렬한 열정을 뿜어냈던 그 눈빛은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 그 눈빛은 어디로 갔나요? 인민의 낙원을 그렸던 선생님의 꿈은 어디로 갔습니까?


사라진 선생님들의 눈빛과 남한 출신 김중종 선생님의 거짓말을 들으며 저는 장기수분들의 절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영상에서 김 선생님 당신의 고향은 안동시 천정리인데 북송 직전 2000년 8월 12일 그곳을 다녀오셨다고 했습니다. “1950년대의 마을보다 더 낙후한 모습이 바로 안동 고향마을이었다”하시며 너무도 단순하고 명백한 거짓 말씀을 하시더군요.


폭정과 폭압, 자의적 지배라는 일반 독재자의 유형을 훌쩍 뛰어 넘어 납치·테러·마약제조와 밀매·위조지폐·영아살해 등 3류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을 일삼는 김정일을 ‘아버지, 어머니로 영원히 모시겠다’고 하시며 어찌 그 눈빛을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일생의 꿈과 가장 적대적으로 배치된 김정일을 찬양하는 척하며 어찌 열정적인 빛을 뿜을 수 있겠습니까? 한국에 대해 뻔한 거짓말을 하시고 들으시며 또 마음으로 얼마나 부끄러움에 치를 떠셨겠습니까?









▲북한은 장기수 송환을 기념해 63명의 사진과 옥중투쟁기간을 명시한 기념우표을 2000년 12월 20일 제작했다. ⓒ데일리NK


선생님.


비록 한탄과 자괴, 굴욕과 분노로 답답하시더라도 꿋꿋하게 인내하셔서, 수 십 년간 감옥을 인내하셨던 그 기백으로 반드시 견뎌내셔서 북한민주화의 날을 맞아 주십시오. 북한을 민주화하는 날 평양에 가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날 다시 그 소년의 눈빛으로 역사를 증언해 주십시오. 부디 건강하게 살아 계시기를 기원합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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