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비전향장기수 ‘특별’ 대우

최초의 북송 비전향 장기수였던 리인모(89)씨의 사망 소식으로 북에서 지내고 있는 나머지 비전향 장기수들의 생활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남측 정부는 2000년 6.15 공동선언에 따라 그 해 9월2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북으로 보냈다. 앞서 1993년 3월에는 리인모씨가 ‘장기방북’ 형식으로 북으로 넘어갔다.

이 중 리씨의 사망으로 북에서 지내다 숨진 사람은 리종환(2001.4), 윤용기(2001.6), 신인영(2002.1), 김종호(2003.11), 강동근(2004.2), 김석형(2006.8), 오형식(2006.9)씨 등 8명으로 늘게 됐다.

북한은 2000년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비전향 장기수 전원에게 “굽히지 않는 신념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조국 통일상’과 노동당 당원증을 수여했다. 대형 아파트와 각종 생필품, 약재 등도 공급하면서 관심을 쏟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려’도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에는 북송 5주년을 기념해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비전향 장기수를 위한 연회를 열었으며 올해 2월 90회 생일을 맞았던 방재순씨를 포함, 80회나 90회 생일에는 직접 축하상을 내려보내고 있다.

첫 북송 비전향 장기수로 16일 숨진 리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리씨는 북에서 ‘의지와 신념의 화신’, ‘통일의 영웅’ 등으로 칭송됐으며 고(故) 김일성 주석은 리씨가 송환된 지 한 달이 채 안된 4월15일 자신의 생일날 직접 리씨를 병문안하고 노동당 당원증을 수여했다.

북송 비전향장기수가 사망하면 북한 고위 간부들의 전용 장의예식장인 평양 서장구락부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국립묘지 격인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치된다.

지난해 숨진 김석형씨 역시 애국열사릉에 안장됐으며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라는 비문이 새겨졌다.

리인모씨의 장례식은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인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어서 북한 당국의 ‘각별한’ 대우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생존해 있는 장기수들은 정치행사 참석이나 주민들과의 ‘상봉모임’, 명승지 참관 등으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에 가족이 있는 사람은 평양시 중구역에, 그리고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보통강 유역 ‘안산’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중 함세환(76).김선명(83).리재룡(64).전 진(85).리세균(87).류운형(84).한장호(85).고광인(73)씨 등은 북쪽에서 뒤늦게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거나 예술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김중종(82)씨는 2003년 한자 이름의 우리나라 인명과 지명, 관직명 등을 ‘조선말’로 표기하는 방안을 연구한 논문 ‘역사의 이끼를 벗겨 본 옛 우리 이름말’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안영기(78)씨는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에 소속돼 ‘재능있는 서예가’로 알려졌으며 손성모(78)씨는 ‘비전향장기수 시인’으로 신문과 잡지에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이밖에 김창원(74)씨는 음악가로 ‘행복 속에 기쁨 속에’, ‘내 사랑, 내 삶의 노래’ 등을 작사.작곡했으며 최하종.최선묵.안영기.김은환.량정호씨는 서예전을, 리경찬씨는 미술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해 강원도 원산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의 작품을 모은 서화전시회가 개최되는 등 북한 당국도 이들의 창작활동을 적극 돕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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