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회동 난망…협상파 입지 약화 반영?

도쿄에서 열리고 있는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서 미국 행정부내 대표적인 협상파로 분류되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애매한’ 입지가 감지되고 있다.

힐 차관보가 6자회담 대화 파트너인 북측 수석대표를 지근거리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NEACD 기간 북미 수석대표 회동이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가 전해지면서 그의 입지에 변화가 생겼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천영우(千英宇)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9일 북미 6자회담 수석대표간 접촉 가능성에 대해 “열리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간 북미 회동의 거간 역할을 해온 우리 측 수석대표가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회동을 마친 뒤 이 같이 말한 것은 금융제재 해제를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삼아 온 북한 입장에 변화를 감지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부상이 이달 7일 “미국의 요청이 있으면 만남을 피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북미 회동 성사 가능성을 낮게 본 천 본부장의 이번 발언은 미국의 입장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측이 이미 이달 6일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을 통해 NEACD를 계기로 한 북미 양자회동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한 터에 북한의 입장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북미간 회동을 성사시킬 명분 또한 크지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6자회담 대표들이 모이게 됐지만 정작 중요한 ‘북미간 양자회동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6자회담이 중단된 상황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든 힐 차관보의 미 행정부내 입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북핵해결의 틀을 마련한 지난 해 9.19 공동성명의 한 주역인 힐 차관보의 입지 는 공동성명 타결 직후 북한이 ‘선 경수로 제공, 후 핵포기’ 카드를 빼 들면서 시험대에 오른 데 이어 회담 교착상태가 길어지면서 약화됐다는 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또 위폐 의혹에서 비롯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북한의 돈줄을 죄는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면서 자연스레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은 것도 힐 차관보의 입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추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욱이 미국이 최근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면 회담 언저리에서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음에도 북한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미 행정부 안에는 6자회담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마저 감돌고 있다는게 정설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도쿄로 향한 힐 차관보에게 북한과 소득없는 대화를 함으로써 괜한 기대감을 심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힐 차관보를 위시한 대북 ‘협상파’가 ‘강경파’와의 힘겨루기에서 완전히 밀렸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외교안보연구원 김성한 교수는 “미국의 금융제재로 북한이 중국에 기대는 경향이 커진 상황에서 오는 20일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북한의 등을 밀어 (북한이)회담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협상파는 다시 힘을 얻게 될 것이고 반대로 중국이 계속 애매한 입장을 보인다면 협상파의 입지는 약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