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핵무기-핵물질 처리’ 동상이몽

북핵 6자회담의 핵심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이 현재 진행중인 비핵화 2단계(불능화와 신고) 이후 지향점에 대해 뚜렷하게 다른 구상을 밝히고 있어 비핵화 3단계(핵폐기)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북한은 현 시점에서는 영변 핵시설에 국한하고 궁극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계속 유지하면서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나가기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확실하게 위험성이 노출된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데서 더 나아가 그동안 생산한 핵물질과 ’핵무기(핵 폭발장치)’를 북한 땅에서 반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16일 영국 방문중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서 생산한 핵물질을 공개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폐기하기 위해 미국 등에 넘겨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 구(舊) 소련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던 우크라이나로부터 핵무기와 핵물질을 인수받아 폐기 처분했던 이른바 ’우크라이나 모델’을 북한에 적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구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핵시설 폐기를 위한 지원방안을 담은 1992년의 ‘넌-루가 법안’에 따라 모두 16억달러 규모의 정부예산을 투입, 수천 기에 달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핵탄두와 미사일, 잠수함과 폭탄 등을 제거해 왔다.

이와 관련,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8일 미국 의회가 핵실험을 실시한 국가에 정부 차원의 자금 지원을 금지한 ’글렌수정법’에 유보조항을 두는 작업을 1~2주 내 마무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글렌수정법 유보조항을 통해 추경예산안을 마련하려는 것은 비핵화 2단계에 필요한 자금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비핵화 2단계까지는 글렌수정법 유보를 통해 상황을 정리하고 본격적인 핵폐기 단계에서는 넌-루가 법안 적용을 도모하겠다는 복안이 읽혀진다.

하지만 북한의 생각은 미국과 판이하다.

부시 행정부 1기 때 대북 특사를 지낸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지난 4월 평양을 방문한 뒤 북한이 비핵화 3단계에 가서도 핵무기 등을 폐기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며 영변 핵시설 해체를 현 단계 협상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측은 특히 미국이 핵무기 보유국인 이스라엘과의 우호적 관계를 지적하며 북한이 미국과 동등한 ’핵보유국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여기에 일부 전문가들은 수천기에 달하는 핵무기를 폐기한 우크라이나와 소수의 핵무기(또는 핵폭발장치)만을 보유한 북한을 단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미국측 구상의 실효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향한 강한 집념 등을 감안할 때 현재 진행중인 비핵화 2단계까지는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더라도 핵폐기를 위한 협상에 돌입하면 북한과 미국간 현격한 인식차로 인해 어려운 협상을 해야할 것이라는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비핵화 2단계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이 서로 상대방의 신뢰성을 거론하면서 시간을 지체할 경우 임기말에 몰린 부시 행정부의 처지 등을 감안할 때 북핵 협상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결국 차기 미국 정권이 등장할 때까지 다시 장기 교착국면이 올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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