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테러지원국 해제’ 탄력적 움직임 눈길

“북한은 불능화와 관련한 기계적 절차를 진행하고 미국은 행정적 절차를 진행한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과 미국 간 현안인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표현’을 사용했다.

북한의 ‘기계적 절차’란 연내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의 신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미국의 ‘행정적 절차’가 의미하는 내용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은 16일 “미국 행정부가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를 위해 해야 할 조치와 연결해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연내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해서 필요한 의회 보고서 제출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올해 안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하기 위해서는 법규정상 그 조치가 발효되기 45일 전에 대통령이 의회에 통보해야 한다. 따라서 16일이 데드라인이다.

하지만 현재 방미중인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조지 부시 대통령간 정상회담이 16일 열리는 점, 미.일 동맹을 고려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 등을 생각하면 이날까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기 위한 의회통보 절차를 밟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게 외교가의 지배적 생각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시한을 앞두고도 직접 당사국인 북한측의 움직임이 매우 조용하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불능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미 핵전문가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는 게 정부당국자들의 전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10.3합의 이행의 전체적 맥락을 중시하고 있다고 보면 되며 약간의 시간차라든지 작은 문구 해석차이 등에 얽매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

결국 10.3합의에서 미국이 취할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를 연내 불능화 완료 등 비핵화 조치와 ‘병렬적으로’ 하기로 한 원칙을 준수하는 선에서 북한과 미국이 서로 탄력적인 행보를 취하는 국면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미국은 북한이 핵시설 불능화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포함한 핵프로그램 신고를 조만간 성실히 완료할 경우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됐을 경우와 ‘동일한 효과’를 연내에라도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워싱턴의 고위 소식통은 전했다.

워싱턴 소식통은 “45일이라는 시한은 의회가 대통령의 명령을 번복할 수 있는 법안을 제출할 기회를 주는 의미가 있을 뿐”이라며 “따라서 부시 대통령의 결심 여하에 따라서는 45일 이전에라도 테러지원국 삭제에 따른 혜택을 북한이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는게 다수설”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누릴 수 있는 효과란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개발은행(IBRD), 수출입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로부터 돈을 빌리거나 정상적인 국제 금융망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국제 금융시스템 편입을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의회조사국(CRS)의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시 박사는 지난 8일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이 의회에 통보하지 않고 12월말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다고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며 “의회의 반발이 있겠지만 부시 대통령의 결정을 뒤집는 법안을 통과시킬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송민순 장관도 지난 7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을 통해 “북한의 불능화 이행과정과 북한 핵시설 및 핵활동 신고상황에 맞춰 미국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삭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해제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미국은 불능화 진척상황과 함께 북한이 조만간 제출할 핵 프로그램의 신고내용을 평가한 뒤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는 판단에 이르면 12월중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해제하겠다는 대통령의 발표를 하거나 북한측에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미국 정부의 입장은 16일의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서도 충분히 전달될 가능성이 높으며 미국은 일본정부도 이에 대비해 ‘납치문제’와 관련된 새로운 논리정비를 촉구할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최근 북한과 미국 수뇌부의 움직임을 보면 비핵화 2단계까지는 서로의 의무를 이행할 준비가 돼있는 듯하다”면서 “따라서 연내에 테러지원국 해제가 되지 않더라도 북한은 이를 문제삼지 않고 불능화와 신고 등 의무이행에 주력할 것으로 보이며 북한의 의지를 수용할 경우 미국은 내년초께 약속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발효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