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주도 양상 두드러져

“북핵 6자회담의 역할과 성격이 미묘하게 변화하는 양상이다.”

6자회담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19일 베이징(北京)에서 이틀째 진행되고 있는 6자 수석대표회담의 특징을 이렇게 분석했다.

핵 시설 불능화와 신고,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경제.에너지 지원과 정치.외교적 상응조치 등 쟁점 현안을 놓고 북한과 미국이 공식 회담이 열리기 하루전인 17일 연쇄접촉을 통해 의견을 조율한 뒤 6자가 모이는 이번 회담의 형식이 ‘의미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민감한 문제일수록 6자가 다 모이는 공식 회의 이전에 북한과 미국이 만나 입장을 조율하는 것이 전체 6자회담의 운영을 효율적으로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과거 북한과의 양자 접촉을 극력 회피하던 미국의 모습과 이번 회담에서 보여준 미국의 태도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게 북핵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른바 제2차 핵위기를 다루는 다자간 협상틀로 2003년 8월 출범한 6자회담이 서서히 북.미 양자 주도의 협상틀로 변모하는게 아니냐는 시각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시발점은 지난 1월 베를린 북.미 회동이라는데 외교가에 이론이 없다.

당시 북한과 미국은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해결을 전제로 이른바 핵시설 폐기를 위한 단계적 조치내용에 합의했었다.

이를 토대로 6자회담이 열려 이른바 2.13합의를 도출해냈다. 결국 북한과 미국의 합의를 바탕으로 6자회담이 열려 양측의 합의를 추인한게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때까지 철저하게 6자회담과 별개의 법적인 이슈였던 BDA 문제가 사실상 6자회담과 연계된 것도 베를린 회동의 결과였다.

베를린 회동이 공개된 이후 한국과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은 “6자회담의 틀내에서 이뤄진 회담”이라고 강조했었다.

지난달 21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방문도 북.미 양자 협상의 한 단면을 말해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때도 정부 당국자들은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가 한국과 중국, 일본의 수석대표들과 만난 것처럼 북한의 수석대표를 만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써 6자회담의 틀내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했지만 외교가의 시선은 달랐다.

베를린 회담과 힐 차관보의 방북에서 북.미 양측은 이른바 비핵화와 안보현안을 놓고 허심탄회한 협의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힐 차관보는 지난달 22일 방북 일정을 마치고 평양을 떠나면서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원하고 있으며 한반도 비핵화는 그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북한측도 미국과의 양자협상에 매우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이번 회담기간에 ‘북.미 양자회담이 아주 이로우며 6자회담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상의 이런 발언은 17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의 연쇄 협의 결과에 만족을 표하는 동시에 불능화와 신고, 이에 상응하는 경제-안보적 조치 등 주요 비핵화 현안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외교가에서는 ‘북한과 미국이 과감한 딜을 하려는게 아니냐’는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그동안 어려운 문제로 평가됐던 ‘핵 프로그램 신고대상’에 핵무기까지 포함시키려는 의지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나, 미국이 북한이 핵포기의 결단을 내릴 경우 대규모 대북 지원을 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런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 전개가 부시 행정부가 북한 핵 문제를 협상을 통해 과감하게 해결하기로 한 정치적 결단을 내린데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베트남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날 용의를 피력했었다.

법집행의 문제였던 BDA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중앙은행까지 동원한 것은 미국 정부 최고 수뇌부의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전문가들은 북.미가 6자회담을 주도하는 현상이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말한다. 당초 6자회담은 북.미 직접 담판을 피하려는 부시 행정부가 선택한 협상틀인 만큼 협상이 본격적인 국면으로 넘어가면 어쩔 수 없이 핵심당사자 중심으로 협상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과 미국이 적극적인 협상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핵화 등 주요 현안에 대한 협의는 북.미 양자협상에서 이뤄지고 6자회담은 양자협의의 결과물을 ‘외교적으로 포장하는’ 공간으로 남게될 가능성을 내놓고 있다.

또 다자외교협상의 특성을 감안할 때 차후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로 전환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급변하는 외교현장에서 변화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면서 “한반도 정세의 변화 속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효율적인 전략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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