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제네바 실무회의 합의 내용과 의미

북한과 미국이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에서 당초 기대를 훨씬 뛰어 넘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올 연말까지’ 북한이 모든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프로그램을 전면 신고하겠다고 합의해줌으로써 `2.13 합의’의 비핵화 2단계 이행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 무엇보다 눈에 띄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북한측에서 핵시설 불능화 및 핵프로그램 신고와 관련해 `시한’을 수용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회의 직후 “우리는 합의한 대로 우리의 핵 계획(프로그램)을 신고하고 무력화(불능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표현했다”고 말한 데서 그런 분위기가 읽힌다.

특히 북한은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의 원인이었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UEP) 의혹에 대해서도 뭔가 구체적인 언질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 분위기는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UEP도 전면 신고에 들어가느냐’는 질문에 신고 대상은 “모든 핵 프로그램”이라고 못박고 “핵 프로그램의 전면신고와 관련해 해결될 것으로 나는 믿는다”고 자신 있게 답변한 데서도 충분히 짐작할 만 하다.

이와 함께 이번 회의에서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 삭제와 대북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 등을 포함한 북미 관계정상화 현안들을 전면 검토하고 상당 부분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미간 이번 합의에 따라, 이달 중순께 베이징에서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6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될 북핵 6자회담 본회담에서는 `제2의 2.13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6자회담 본회담에서 `제2의 2.13 합의’가 도출될 경우 그 안에는 올 연말을 시한으로 구체적 시간표에 따라 북한의 비핵화 2단계 이행 조치들이 담기는 한편으로, 각 단계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구체적 대북 관계정상화 조치, 경제 지원 및 에너지 보상 등을 포함한 나머지 5개국의 이행조치들이 담길 전망이다.

◇ 연내 비핵화 2단계 이행 = `2.13 합의’에 따른 북한 핵시설의 `동결’을 의미하는 비핵화 1단계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이미 이행을 마쳤다.

영변 5MW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 등의 가동 중단 및 폐쇄 조치를 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팀의 복귀를 통해, 관련 핵시설에 대한 봉인 조치를 마치고 감시.검증 활동을 허용했다.

그러나 비핵화 2단계 조치 중 하나인 `불능화’는 북한내 모든 핵시설들을 다시는 가동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다.

지난 달 중국 선양에서 진행된 비핵화 실무그룹 회의를 포함해 6자회담 참가국들은 영변 5MW 원자로에 대한 불능화를 원자로의 핵심 부품인 제어봉 구동장치를 제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으로는 이달 중순께 진행될 6자회담 본회담에서 나머지 참가국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절차는 남아 있지만, 핵심 당사국인 북미 양국 간의 이번 합의는 그대로 추인될 가능성이 높다.

양국은 이번 회의에서 `연내’라는 시한을 정해 놓고 불능화의 시간표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힐 차관보는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불능화되어야 하는 시설들을 불능화시킨다는 것을 발표하게 될 것”이라며 “일례로 거기에는 영변의 원자로가 포함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2단계 이행 조치와 관련해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양국 모두 상세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UEP) 의혹과 관련해 북미 간에 뭔가 일정한 의견 접근을 이뤄낸 듯한 대목이다.

영변의 5MW 원자로 등 플루토늄 관련 부분이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Agreed Framework)를 통해 해결된 제1차 북핵 위기의 원인이었다면, UEP 의혹은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의 진원지이다.

북한은 지난 달 선양에서 열린 비핵화 실무그룹 회의에서 미국측에 `증거를 제시하라’는 등의 조건을 전혀 제시하지 않은 채, 핵프로그램 신고 과정에서 해명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번 회의에서도 그 것과 관련한 모종의 진전된 입장을 미국측에 전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해 힐 차관보는 “아주 좋은 논의를 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2단계 이행 이후에는 폐쇄된 영변 5MW 원자로에서 추출된 폐연료봉 8천개를 어떻게 처리할지,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를 어떻게 처리할지 등이 또 다른 난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 비핵화 2단계 이행의 반대급부 = 북한의 비핵화 2단계 이행 단계에 맞춰, 미국과 일본의 구체적 대북 관계정상화 조치, 경제 지원 및 에너지 보상 등을 포함한 나머지 5개국의 이행조치들도 취해진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1950년 한국전 이후 60년 가까이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북미 양국 간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임은 물론이다.

힐 차관보가 2일 회의에 앞서 “우리는 신속하게 비핵화로 가는 그 만큼, 신속하게 관계정상화로 갈 것”이라고 말한 대목을 감안한다면, `연내 불능화 및 전면 신고’라는 비핵화 2단계의 이행 단계 및 시간표에 맞춰, 올 연말까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 삭제 및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 등 초기 관계정상화 조치들에서도 일정한 진전이 있을 것이 확실시된다.

이에 대해 김 부상은 “미국측은 그들이 약속한 정치.경제적 보상 조치를 취할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면서 “조(북)미 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현안들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많은 일치를 보았다”고 밝혔다.

김 부상은 “정치적 보상조치란 우리를 적대하는 정책을 바꾼다, 평화공존을 구축하기 위한 제도적, 법률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뜻”이라고 말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에서 일정한 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여부에 `관건’이 되고 있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관해서도 북한이 어느 정도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5∼6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개최될 북일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 결과가 주목된다.

이와 함께 6자 간에 이미 합의한 대로 일본을 제외한 4개국은 북한에게 100만t의 중유를 제공하게 되며, 그 절반은 중유로, 나머지는 발전소 재건과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설비.자재로 보상하게 된다.

김 부상은 “그 전진(진전)에 따라서 보다 더 많은, 지원이 아닌 보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2주 가량 남은 6자회담 본회담에서 이 같은 `행동 대 행동’ 조치들을 담은 제2의 2.13 합의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그 합의에 따라 올 연말까지 그 이행도 원만하게 이뤄질 경우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안보 메커니즘을 창출하는 문제를 놓고 다시 6자가 머리를 맞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