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대화조건 완화되나

미국의 대북접근 방식에 미묘한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북한이 비가역적 비핵화를 확약하지 않고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기조가 여전히 지배적이지만 대화 자체를 거부할 필요가 있느냐는 견해가 워싱턴 조야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물론 대전제는 제재의 지속이다. 다만 비가역적 비핵화 조치는 제재 철회의 조건이어야지 대화 시작의 조건으로 못박는 것은 전략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30일 “현재 제재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만큼 대화를 시작하는 것 자체에 대해 이런저런 조건을 달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나온다”며 “제재가 정지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인식이 한.미.일.중.러 5자간에 확실하다면 굳이 조건을 붙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교착상태인 북핵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의미있는 변화의 시그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6월 유엔의 제재결의 1874호가 통과된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가속화되면서 북한의 고립구도가 심화되고 있지만 북한은 오히려 더 핵을 안으로 움켜쥐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게 관측통들의 시각이다.

특히 최근 미국과 한국을 향해 일련의 유화제스처를 취하며 제재흐름을 돌파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미국의 본질적 주문인 비가역적 비핵화 조치에 대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관측통은 “현재 제재 일변도의 대북압박 기조가 북한의 태도에 일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효과를 보고는 있지만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데는 다소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들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미국으로서는 제재기조를 유지하는 한편으로 대화의 숨통을 터주면서 북한을 자연스럽게 6자회담의 틀로 복귀시키는 전략을 검토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내달초 아시아 순방길에 나서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주목된다. 보즈워스 대표는 한.중.일.러 등 6자회담 관련국과의 의견조율을 거쳐 북한과의 양자대화에 대비한 길 닦기를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6자회담의 형식적 틀을 살리면서도 내용에서는 북.미 양자대화의 여건을 `숙성’시키려는 포석을 담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북한의 흥미를 유도할 카드로서 `포괄적 패키지’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 논의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다만 소식통들은 `대화’와 `협상’에는 분명한 선을 긋는 분위기다. 한 소식통은 “대화가 곧바로 핵포기와 포괄적 패키지를 논의하는 협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협상은 비가역적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 조치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미묘한 기류변화 속에서 북.미간 대화가 조기에 성사될 수 있다는 다소 앞선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 북.미간 직접대화를 겨냥하며 일련의 유화제스처를 보여온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입장변화가 가시화될 경우 이에 적극 호응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은 28일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에 어떤 전제조건도 달지 말아야 한다”며 “보즈워스 대표가 내달 중순경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북.미 대화는 양국이 일정한 명분축적의 과정을 거친뒤 구체적인 시기와 방식이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현재 워싱턴은 강경기류가 지배하고 있고 협상 틀을 둘러싼 북.미의 입장에도 큰 변화가 없다”며 “북한과 대화를 하자는 견해도 나오고 있지만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연합